7세기 백제 국왕권의 확립을 불교를 통해서 살펴보았다. 먼저 법왕의 계율시행에 관한 『三國史記』와 『三國遺事』에 실린 기록을 비교 검토하여 계율의 성격에 관하여 알아보았다. 이를 통하여 『三國史記』에 실린 기록이 보다 더 당시의 기록에 근접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법왕은 50여세를 전후하여 즉위하였다. 즉위 전 법왕은 백제 국내의 권력투쟁과 법화경을 비롯하여 당시에 널리 유행하고 있었던 불교 경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법왕의 계율은 왕흥사 창건과 일맥상통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것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 하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되어 왕흥사와 관련이 깊게 서술된 미륵사부터 살펴보았다. 미륵사에 관한 서술은 먼저 『三國遺事』무왕조의 기록을 분석하였다. 먼저 이 설화는 서동이라는 인물이 신라의 절세미인인 선화공주를 차지하여 백제왕이 되었다는 일종의 영웅설화와 미륵사 창건이라는 연기설화가 합쳐져 잇는 것을 알아보았다. 영웅설화상의 서동은 신라인들을 통쾌하게 속여 선화공주와 혼인하였던 것으로 미루어 관산성 패전 이후의 백제인들의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시켜 주었다. 무왕은 연못속의 미륵을 솟아나게 하여 미륵불국토를 실현시키게 하였다. 이젠 오랜 전쟁으로 지친 백제의 민중들에게 미륵불국토의 실현을 꿈꾸게 함으로써 7세기에 행해진 잦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