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익산지역 정치체의 성립과 세력 변동
1. 익산지역의 문화기반과 건마국의 성립
2. 준왕의 남하와 한연맹체의 형성
3. 준왕세력의 절멸과 건마국의 세력의 재대두
III. 건마국의 세력확대와 마한연맹체
1. 진국연맹체의 해체
2. 건마국의 세력확대와 마한연맹체
3. 건마국에서 목지국으로 맹주국의 변화
IV. 백제사상의 익산세력
1. 백제의 건마국 병합
2. 백제 귀족사회에서의 입점리 1호분 피장자
3. 무왕의 익산경영과 익산세력
V. 맺음말
요약
익산지역은 일찍이 청동기문화 및 초기철기문화가 다른 지역보다도 발달한 곳이었다. 특히 桃氏劍의 존재는 이 지역이 중국과도 교역을 하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러한 문화기반을 바탕으로 건마국이 성립하였다. 그 후 서기전 2세기 초에 준왕집단이 익산으로 남하하여 韓王을 청하게 됨으로서 韓聯盟體가 형성되었다. 이 마한연맹체의 맹주권은 얼마 후 건마국에서 직산․천안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한 목지국 세력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 목지국은 246년에 일어난 마한과 중국 군현과의 대규모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그 위상이 흔들리게 되었다. 이 틈을 타서 한강유역에서 성장한 백제국은 목지국을 대신하여 마한의 새로운 맹주국으로 등장하였다. 이처럼 백제국이 마한연맹체의 새로운 맹주국으로 등장하게 되자 이에 반발하여 영산강 유역의 新彌國을 중심으로 하는 20여국은 별도로 연맹을 결성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신미국 중심의 남부마한연맹체이다. 북부마한의 맹주국인 백제국은 비류왕대에 와서 田獵과 習射를 통해 군사력을 강화하고 고구려와의 충돌도 피하면서 남방으로의 진출을 적극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남부마한연맹체에 속해있던 전북지역을 영역으로 편입하였다. 웅진천도 이후 익산지역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무왕대이다. 익산지역은 서동이 어린 시절 流寓하던 인연 있는 곳이었다. 또 그의 모후 가문은 馬龍池를 축조하는 등 익산지역에 일정한 세력기반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익산지역을 적극 경영함으로써 정치적 지지기반을 확대한 무왕은 익산으로의 천도를 추진하였다. 그러나 무왕의 익산천도 계획은 사비지역을 기반으로 한 유력귀족들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익산에는 대왕묘 ․ 소왕묘라고 하는 쌍릉이있는데, 아마도 의자왕은 부왕이 천도를 단행하지 못한 염원을 사후에나마 풀어드리기 위해 익산에 대왕묘와 소왕묘를 조영하고 여기에 부왕과 모후를 모셨던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