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좌평 관계 기사의 현황
Ⅲ. 좌평의 설치 및 분화와 그 성격
Ⅳ. 4세기 백제의 지배체제와 좌평
1. 근초고왕의 집권력 강화
2. 백제의 지배체제와 좌평
Ⅴ. 맺음말
요약
백제의 좌평 관련기사는 『삼국사기』백제본기․중국정사, 『일본서기』에 전하고 있으며, 고이왕 27년 기사는 대단히 정치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3세기 중엽경의 사실을 전해주는 『삼국지』에 백제국은 목지국이 영도하는 마한연맹체의 한 구성체로만 나오고 있다. 또한 3세기 중반 중국 군현세력과 삼한사회 사이에 벌어진 대규모 전쟁, 즉 고이왕 13년에 해당되는 정시 7년(246)의 기리영전투의 주체가 백제국이 아니라 신분고국이었다는 점에서 보듯이, 당시까지도 마한사회에서 백제국의 위상은 여타의 소국들을 제압할 정도로는 되지 못하였다. 따라서 6좌평제와 16관등제의 정치체제 정비의 내용은 고이왕대의 사실로 인정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비록 이러한 내용들이 고이왕대에 완비된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일정한 역사적 경험을 담고 있었을 것이다. 『삼국사기』에 보이는 6좌평제가 후대적이라고 할 경우에는 근초고왕대의 좌평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 문제가 된다. 근초고왕대에는 대외정복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왕권의 물적 기반이 확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정치세력들도 등장하고 있었다. 이는 백제가 가야지역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목씨와 사씨, 그리고 4세기 전반 낙랑 대방군의 한반도내 소멸이라는 정세의 변화와 근초고왕 26년 백제의 이 지역 진출에 따른 낙랑․대방계를 들 수 있다. 따라서 근초고왕대에는 새롭게 등장하는 정치세력을 편제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근초고왕의 새로운 정치세력들의 정치적 영향력과 역할을 고려하여 좌평 등에 임용하였을 것이다. 결국 근초고왕 관제의 핵심을 이루고 있었던 것의 좌평이었으며, 관직적 성격을 갖는 6좌평제로 직능 분화는 아직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