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웅진 천도의 배경
III. 웅진 도성과 웅진성
1. 웅진 도성의 구조
2. 웅진성의 축조 시기
3. 사비시기의 웅진성
IV. 맺음말
요약
百濟의 웅진 천도 배경과 웅진시대의 웅진성을 둘러싼 몇 가지 문제들을 고찰해 보았다. 백제의 웅진 천도는 475년 고구려 공격에 의한 한성 상실 때문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475년 고구려의 한성 함락은 완전한 한성 地城의 장악이 아니라, 한강유역에 교두보를 마련한 것이었다. 따라서 웅진 遷都의 직접적인 요인은 백제의 수도였던 한성의 상실이 아니라, 한성의 폐허화일 것이다. 또 하나는 잠재되어 있는 고구려의 공격 가능성이다. 고구려의 잠재적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車嶺山脈과 鷄龍山地 사이를 관류하는 금강 남안에 위치한 천연적 요새지인 웅진에 도읍하게 된 것이며, 이러한 자연 지리적 이점 때문에 웅진이 천도의 대상지가 되었던 것이다. 또 한 가지 배경은 상처받은 백제 왕실의 귄위회복이라고 할 수 있다. 蓋鹵王의 전사로 왕위에 오른 文周王은 폐허가 된 한성에 머무를 수 없었다. 새로운 도읍지에서의 체제 정비를 모색하였던 것이다. 고구려의 한성 함락이라는 물리적인 외압을 계기로 이루어진 웅진 도읍기는 백제 국가체제를 재정비하는 준비의 시간이었다. 웅진 도읍기는 64년으로 마감되었다. 그것은 웅진 천도가 갑자기 이루어졌고 守勢的 입장에서의 천도였다는 점에서 장기간의 왕도로서는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따라서 왕권이 안정기에 접어드는 동성왕대에는 사비라는 새로운 도읍지를 물색했던 것이다. 그러나 웅진성은 사비로 천도한 뒤에도 지방통치의 중심성인 5방성 가운데 하나인 북방성으로써 계속 기능하였다. 왕도의 천도와 관계없이 웅진성은 군사․행정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사비시기에도 웅진성에 대한 백제 중앙의 관리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공산성에 대한 발굴과 그에 대한 연구가 심화된다면, 개별 유구에 대한 천착과 도성․사원․고분․산성의 구조 등에 대한 종합적인 면을 고려하여 웅진 도성의 행정체계나 시설, 도성민의 존재 양태 등을 전제로 한 공산성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해명이 계속 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