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원리 유적은 대체로 4~5세기대로 편년될 수 있는 유적으로 분묘군과주거지가 이웃한 형태로 있는 것이다. 분묘군은 137기의 토광묘와 13기의 수혈식 석실분이 포함된 형태로 있으며, 분포상에서 비교적 규칙성을 보인다. 석실분 중에 9호로 구분된 1기는 전체 고분군에서 약간 이격된 위치에 단기로 존재하지만 묘제나 유물의 갖춤새는 동일한 것으로 이 고분에서는 부장시기를 어림잡을 수 있는 중국제 흑유 계수호 1점이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 계수호의 편년관을 토대로 용원리 유적의 상대년대를 추정하게 위하여 본고를 작성하였다.
용원리의 분묘유적은 묘제나 출토유물로 미루어 대체로 4~5세기대로 편년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략적 편년관은 보다 세분될 필요가 있는데, 출토품으로 계수호는 중국 동진대에 德靑窯産으로 비교적 일정시기에만 제작되어 유포된 것이다. 이 계수호는 묘비명을 동반한 고분 출토품도 있는데, 대체로 4세기 중․후반에서 5세기 초반의 것들로 판단된다. 그리고 계수호 자체의 형태변화를 근거한 편년관에 의거하면 용원리 출토 계수호는 적어도 4세기 후반에서 그리 늦지 않은 시기에 소속시킬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계수호와 동반된 유물의 속성과 관련 묘제로 미루어 9호 석실분이 용원리 유적으로서는 후행의 즉 비교적 늦은 단계의 것으로 볼 수 있어 용원리 분묘군의 하한 년대는 4세기 후반, 적어도 400년은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 결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