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부여박물관에는 1964년에 부여 부소산 사비루 남측에서 채집된 것으로 전해지는 ‘S'자형 靑銅鑣 1점과 재갈 環片 1점이 소장되어 있다. 그런데 이와 동일한 재질과 형태를 하고 있는 靑銅製 및 完形의 ‘S'자형 鐵製 鑣轡가 ’96년도에 부소산성 사비루 남편 통일신라 건물지 주변에서 출토되어, 扶博 靑銅鑣의 정확한 구조는 물론 그 성격과 시간적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부소산성 출토품들은 기본적으로 함 外環部가 엇갈린 방향의 二重環 구조로 되어 있고, 철제표비는 一本條의 頭洛을 연결할 수 있는 입문이 표에 일체로 부착되어 있으며, 긴 인수가 사용된 점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표비의 계통을 추적하여 본 결과 漢代의 ‘S'자형 표비와는 오히려 차이가 많고 북방계 구체적으로는 선비계 마구에 그 원류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함 외환의 이중 구조는 4세기대 이후 백제에서 변화·발전된 형태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점과 부소산성의 성격을 고려할 때 부소산성 사비루 부근에서 출토된 표비들은 백제 사비기~통일신라시대에 해당될 수 잇을 것이다. 이 시디 唐代 馬具 문화의 영향을 고려할 수도 있으나, 그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생각된다. 대신 출토 정황이나 탑리 출토품의 예 등을 미루어 보면 백제보다 오히려 통일신라대에 속할 가능성이 다소 높다고 판단된다. 한편 경주 탑리 출토품은 鑣 끝의 갈라진 모습이 唐 韋洞墓 것과 동일하지만, 銜 外環과 입문 형태 등에서 전체적으로 재지적인 성격이 강하여 부소산성 출토품과 대체로 동시기로 봄이 좋을 듯하다. 이들은 아직까지 그 실상을 잘 모르고 있는 삼국 말~통일신라시대 마구의 양상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