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羅濟同盟에 대한 再檢討
Ⅲ. 高句麗의 新羅 압박과 百濟의 군사지원
Ⅳ. 百濟 ․ 高句麗의 爭鬪와 新羅의 독자 노선
Ⅴ. 맺음말
요약
필자는 웅진시대 백제와 신라와의 관계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그 결과 이 시기 백제와 신라는 주로 백제의 필요에 의해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였지만, 고구려가 이에 위협을 느끼고 두 나라 사이의 협력 관계를 파기시키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양국 사이의 군사 협력도 동맹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고구려와의 세력 균형 상 진행된 측면이 많았다는 것을 밝혀낼 수 있었다. 제2장에서는 羅濟同盟에 대한 재검토를 하였다. 먼저 433년에 성립하였다는 견해는 예물의 교환을 맹약의 징표로 삼았지만 訥祗王34(450)년의 우호 관계를 강조한 고구려 측의 항의와 신라의 사과 등을 고려할 때, 양국 간에 동맹 관계가 성립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백제와 신라 사이의 실질적인 군사 협력은 455년 이후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제3장에서는 5세기 후반 양국 사이의 군사 협력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양국 사이에 군사 협력이 이루어진 전투에서는 모두 승리함으로써 이의 위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고구려에서는 양국 사이의 군사 협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하여 백제의 구원이 힘든 신라 지역을 공격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이는 군사 협력이 주로 백제 측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에 참여한 신라에 위협을 줌으로써, 양국 사이의 협력에 회의를 갖게 한 전략을 택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제4장에서는 6세기 전반 백제와 신라와의 관계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에 따르면 백제는 단독으로 고구려와 일전을 벌였으며, 여러 번 고구려를 격파함으로써 다시 강국으로 등장할 수 있었다. 신라는 이와 같이 백제의 성장과 고구려의 위협이라는 상황에서 양국 간의 전투에 개입하지 않고 내부체제 정비에 박차를 가하는 정책으로 전환하였다. 웅진시대 백제와 신라의 관계는 동맹을 맺어 일관되게 고구려의 남하에 대비한 것이 아님은 명확하다. 즉 두 나라는 이 시기에 고구려를 매개로 한 양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여 필요에 따라 협력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이는 언제든지 파기될 수 있는 잠정적인 것이었다. 한강 유역에서 백제의 패배와 상대적인 신라의 급성장은 바로 이와 같은 삼국 사이의 역학 관계에서 기인한 것이며, 이에 그 의미를 갖는다 하겠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