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
Ⅱ. 『백제본기』와 『신라본기』의 ‘樂浪’ 기사 분석
Ⅲ. 『백제본기』에 나오는 ‘東有樂浪’
Ⅳ. 廉斯鑡 기사의 새로운 이해
Ⅴ. 결 론
요약
백제 건국 초기에 등장하는 ‘낙랑’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우선 『삼국사기』 초기 기록에 보이는 낙랑 관계 기사는 ‘낙랑군’과 관련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 『삼국사기』에는 ‘낙랑국’과 관련하여 「고구려본기」에 보이는 최리의 낙랑국과 「백제본기」에 등장하는 ‘동쪽의 낙랑(동유낙랑)’ 그리고 「신라본기」의 ‘이웃 국가(隣國)’인 낙랑 등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다수의 낙랑 소국이 존재하였을 것이란 추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백제본기」에 등장하는 ‘낙랑’의 실체가 다름 아닌 진한의 한 세력일 가능성까지도 제기하였다. 「백제본기」 온조 25년 기록에는 온조왕이 ‘辰馬’를 병탄할 마음을 먹게 되었다는 부분이 있는데, 이 ‘진마’가 ‘진한과 마한’을 가리킨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백제 초기의 주요 적대 세력으로 마한과 함께 진한 세력도 존재하였음을 추측케 한다.
하지만 「백제본기」 초기 기록 어느 곳에도 진한을 정벌하는 직접 기사는 찾아볼 수 없다. 대신에 말갈과 마한 이외에 ‘낙랑’만을 정벌하였다는 기사가 나타날 뿐이다. 따라서 『삼국사기』「백제본기」 초기 기록에 나오는 ‘동유낙랑’의 실체와 관련하여 이를 경상도 지역으로 남하하지 않은 진한 세력의 일부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보는 것이다. 이러한 추측은 陳壽의 『삼국지』진한전에 진한인 스스로가 낙랑인을 자신들의 ‘잔여무리’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보인다는 점을 통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또 『삼국지』한전 「위략」기사와 『후한서』한전에 실린 廉斯鑡와 廉斯人 蘇馬諟 기사는 동일한 내용을 설명하는 것이라 볼 수 있는데, 위의 두 기록을 통해 우리는 서기1세기에 진한 세력 중의 하나로 추정되는 廉斯邑君 소마시 등은 여전히 경주 지역으로 남하하지 않은 채 한강 유역에서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삼국지』 기록에 廉斯鑡를 ‘진한의 右渠帥’라 칭하는 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인데, 이로 보면 진한이 모두 경상도 지역과 관련이 있다고 파악하는 것에 무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