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문제의 제기
Ⅱ. 史料의 특징
Ⅲ. 郡令의 파견
Ⅳ. 城主의 변화
Ⅴ. 郡令·城主의 파견배경
요약
성왕대를 중심으로 군령과 성주에 대해 검토를 하고 군령과 성주의 파견배경을 지방통치조직에서만 아니라 대외관계의 변화 속에서 검토해보고자 하였다.
성왕대의 방군성체제와 관련한 군령과 성주의 기록을 『일본서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서기』에서 군령과 성주에 대한 자료를 전해주는 시기는 백제가 사비로 천도한 해인 538년에서 멀지 않은 540년대 전반기에 몰려 있으며, 모두 성왕의 대가야 외교와 관련하여 언급된다. 성왕대 군의 설치와 군령의 파견은 담로체제에서 방군성체제로의 변화를 알려주는 중요한 지표이다. 이것은 군이 지역단위의 성(촌)을 대신해서 점차 새로운 지방행정 중심으로 부상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군은 지역단위인 성(촌)과 상급의 방을 연결하는 중간고리의 기능을 하였으며, 성주의 변화에 영향을 주었다. 담로체제 하에서 군 범위의 지역을 관할하던 성주가 지역단위의 성(촌)의 책임자로 바뀌게 되었다. 그런데 주목할 사실은 성주가 이때에도 군에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점에서 사비시대의 지방통치조직을 또 다른 의미에서 군령-성주체제라고도 불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성왕대의 이러한 모습은 군의 본래 기능을 고려할 때 여전히 제한적임을 알 수 있다. 당시 군이란 용어는 郡治의 의미보다는 다수의 지역단위 성(촌)을 묶은 광역구역의 의미가 강하였기 때문이다. 군을 구성하는 성(촌)들이 거점으로 동등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점차 군제의 정착과정에서 군치의 개념이 나오고, 정치적 비중이 높아지면서 군이란 용어가 군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확대되었을 것이다. 거점지배 형태에서 영역지배형태로 전환되어 갔던 것이다. 이에 따라 성주의 역할 역시 점차 현령으로 변화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왕대 『일본서기』의 기록들은 방군성체제가 정착해 가는 과도기적 모습을 군령과 함께 활동하고 있는 성주의 모습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540년대 백제가 새로이 영토로 편입한 가야지역에 군령과 성주를 파견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는 사비천도 이후 추진된 성왕의 대고구려 정책과 관련이 있다. 백제는 대고구려 공동전선을 구축하기 위해 가야를 자기의 세력권에 포함시켜야 했다. 또한 고구려와 신라의 동맹 가능성을 언급하며 가야지역에 군령과 성주의 파견이 백제의 가야진출을 위해서가 아니라 신라의 가야진출을 저지하기 위한 필요성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설득하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백제의 의도와는 달리 가야나 왜는 백제의 가야지역에 대한 새로운 진출로 받아들여 이들의 반발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러한 사정은 일본서기의 철수논의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