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1. 백제 제21대 蓋鹵王부터 제27대 威德王까지의 系譜
2. 백제 武寧王의 大和倭의 정치․불교 경영
3. 백제 聖王의 大和倭 경영
4. 백제 威德王의 大和倭 정치․불교 경영과 法隆寺
夢殿의 觀音像
맺는말
요약
서기 501년부터 522년까지 재위한 백제 무령왕은 아직 관위가 제정․실시되지 않은 대화왜에 백제 왕자나 오경박사를 파견하여 그곳을 통치하였으며, 통치의 결과 얻어진 대화왜의 특산물인 말 40匹을 백제로 가져오기도 하였다. 일본을 통치한 무령왕의 존재는 1971년 공주에서 발굴된 무령왕릉과 그 묘지명, 그리고 무령왕의 관재가 일본에서 생산되는 목재로 이루어졌다는 물적 증거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고 하겠다.
부왕인 무령왕의 뜻을 계승한 성왕은 무령왕보다 더 대규모의 각종 전문인으로 구성되는 경영 팀을 일본에 파견하였으며, 일본에 최초로 백제불교를 포교하기도 하였다. 성왕은 무령왕보다 더 많은 물자를 일본에서 백제로 가져왔는데 『일본서기』에 나타난 것만도 보리 종자 1000석, 良馬 70匹, 선박 10척 등 막대한 것이었다.
부왕인 성왕의 대일 불교 정책을 더욱 계승 발전시킨 위덕왕은 백제 관리, 승려, 造寺工, 造佛工 등을 파견하여 여러 곳에 사찰과 불상을 조성하고 이를 경영하였으나, 그 가운데서도 588년부터 596년까지 8년간에 걸쳐서 조영한 元興寺(飛鳥寺)가 가장 대표적인 사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위덕왕은 대화왜의 善信尼를 불러서 교육시켜 다시 파견하였으며, 백제승을 파견하여 법륭사에 입주시킴과 동시에 부왕인 성왕을 위해 몽전관음을 조상하였다는 『聖譽抄』의 내용은 위와 같은 사실들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위덕왕의 조부인 무령왕이 오경박사 등을 파견하여 일본을 경영하고 부왕인 성왕이 일본에 승려들을 파견하여 백제불교의 포교에 힘을 기울인 데 대해 위덕왕은 조사공, 와박사, 불탑 노반 주조 기술자, 조불공, 화공 등 사찰과 불상 제작 전문기술자를 파견하여 그곳 일본에서 사찰과 불상을 제작하였으므로 설서 법륭사몽전의 구세관음상을 위덕왕이 제작했다는 기록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 불상은 무령왕이나 성왕 시대에 제작한 것이 아니라 위덕왕 때의 제작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663년 백강구전쟁에 참전하여 나․당 연합군과 항쟁을 한 일본군이 백제왕 풍의 군대였다는 사실은 잠시 접어두고라도, 역대 백제왕이 대화왜 경영 팀을 파견하여 그곳을 통치하고, 또 사공과 불상조상 전문인단을 파견하여 백제왕을 위해 사찰과 불상을 조성하고 또한 조성된 불상을 그곳에 안치하였다면 그곳도 백제 본토처럼 백제의 강역임이 자명해지는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