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영남지역의 경기,호서지역 마한,백제계토기 자료
Ⅲ. 영남지역에 나타난 경기,호서지역 마한,백제토기의 의미
Ⅳ. 맺음말
요약
본고는 영남지역의 마한, 백제계 유물 자료 중 주로 경기, 호서지역과 관련된 토기의 분포 양상과 그 의미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먼저 영남지역의 경기, 호서지역 관련 마한, 백제계 토기는 비교적 많은 자료들이 확인되거나 특징이 뚜렷한 부산, 김해지역, 하동지역, 산청지역, 합천지역, 고령지역, 경주, 대구, 포항 지역, 상주지역 등 7개 지역으로 나누어 살피고 마한단계와 백제단계(가야와 가야 고지: 5세기와 5세기말~6세기 중엽, 7세기, 신라)로 나누어 지역들간의 관계에 대해 파악해 보았다.
영남지역의 경기, 호서지역 관련 마한, 백제계 토기 자료는 2~7세기대에 걸쳐있으며 공간적으로는 진, 변한과 신라, 가야의 중앙이나 중심지, 지방 등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먼저 마한단계에는 변진한의 중심소국이 있었던 경주와 김해 지역에 관련 자료들이 나타나는데 경주지역은 비교적 이른 2세기 후반~3세기대의 자료가 많은 편이고 관련 토기도 다양한 편인데 비해 김해지역은 대체로 3세기 이후의 것이며 토기도 단순한 편이다. 두 지역의 양상은 교류 경로상 차이와 함께 관계나 영향 정도에서의 차이도 반영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후 백제단계에는 5세기대부터 호서지역을 중심으로 한 백제의 가야 진출양상이 경남 서부내륙지역 토기 자료에서 드러나기 시작하며, 고배, 개배, 단경호 등의 기종을 중심으로 고령이나 합천 지역에도 백제 토기의 유입이나 영향이 나타난다. 이는 6세기 중엽까지 이어지는데 백제가 대사를 병합해가며 이 지역에 진출하는 과정, 가야지역에서 임나부흥회의 등이 이루어지면서 백제와 가야가 정치적으로 긴밀해지는 양상과 관련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야 고지에 백제 사비기, 7세기 이후 중요 토기 자료들이 나타나는 것은 백제의 이 지역에 대한 정복과 거점화와 관련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신라 중앙에서도 6세기대에 기술의 전파로 인해 백제 관련 토기나 관련 자료들이 나타난다. 따라서 영남지역의 마한, 백제 관련 토기 자료들은 대체로 마한, 백제와의 정치적인교섭이나 긴밀한 관계, 백제의 영역화, 백제 지방민의 이주와 교류 참여 등 여러 요인에 의해 나타난 것으로 이해된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