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의 역관계 변화에 대해서 지금까지 3시기로 구분하였으나 복잡하게 전개된 삼국의 역관계 변화를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6시기로 구분해 보았다.
1기는 삼국관계의 서장을 연 시기로 고구려의 남진은 신라와 백제에 긴장을 고조시켰고 남하해 오는 고구려에 대결하기 위해 백제는 신라와 화호를 도모하고 평양성전투에서 고국원왕을 전사시키는 등 백제가 고구려와 대결하면서 팽팽한 힘의 균형관계를 유지한 시기였다. 2기는 광개토왕, 장수왕대의 전성기로 고구려의 성세를 파악한 신라는 고구려의 힘을 업고 왕권강화를 도모하기 위해 고구려에 접근하였다. 이는 백제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였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왜와 가라와의 관계를 긴밀히 하였다. 그러나 신라의 원백제, 친고구려정책은 고구려, 신라 연합 대 백제, 왜, 가야 연합의 대결 양상을 가져왔다.
3기는 고구려의 평양 천도 등 남진정책이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됐으며 백제는 신라와 고구려 남진 저지라는 공통 목표 하에 동맹관계를 맺었다. 제라동맹은 고구려의 대내외적 혼란 발생을 틈타 한강유역을 되찾았으나 고구려와 신라의 접선으로 제라동맹이 붕괴되어 백제와 대결하는 양상이 되었다. 5기는 고구려의 남진정책과 신라의 완강한 저항으로 고구려와 신라 사이가 틀어지고 백제 또한 신라와 틀어진 채로 공방전이 지속되는 등 삼국 중 어느 일방도 우세를 잡지 못한 채 상호대립과 항쟁이 되풀이 된 시기이다. 6기는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키고 대중국 강경노선을 취하면서 한강유역 회복을 위해 신라에 대한 압박이 강해졌고 백제는 의자왕이 왕권강화를 추진하는 정치적 변화가 있었다. 이때, 백제는 친고구려 외교를 추진하고 신라는 대당외교를 적극 전개하여 고구려, 백제로 연결된 남북진영과 신라, 당으로 이어진 동서진영이 대립하는 양상을 나타냈다.
이후 나당연합에 의해 백제, 고구려가 차례로 멸망되고 한반도 영토를 둘러싸고 당과 신라가 대결한 결과 신라가 당군을 몰아냄으로서 대동강이남지역 통일을 이루면서 삼국의 관계는 종말을 고하였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