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II. 백제의 초기의 동명신화
III. 한성 몰락 직후의 백제신화
IV. 웅진시대의 백제신화
V. 사비시대 백제신화
VI. 결론
요약
본고는 백제의 건국신화에 관한 연구이다. 백제의 건국신화는 신이성을 지닌 산화보다 역사적 기록에 가까우며 건국주에 관한 여러 이설이 있어 온조가 건국주인지 조차 의심스럽다.
백제 초기 동명왕 신화를 차용한 것은 백제 초기 비류계를 물리친 온조계에 의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초기에는 고구려에 대한 저항심을 갖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개로왕이 고구려의 장수왕에게 패배하여 전사함은 물론이고 한성이 쑥대밭이 되면서 백제는 적국이 된 고구려의 신화인 주몽신화를 더 이상 차용할 수 없었다. 따라서 새로운 건국주로 등장한 것이 외국 역사기록에 보이는 구태와 도모설이다.
국내적으로 웅진으로 천도하면서 새로 등장한 모씨계 문주왕은 웅진의 토착세력의 협조가 절실하여 이들을 포용할 필요가 있어서 곰 토템을 가진 이곳 토착세력의 곰나루 전설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는 토착세력이 백제 세력에 협조하였으나 부여로의 천도, 백제 멸망이란 역사적 비극을 수용하여 비극적 종말을 가진 전설적 신화로 약화되어 오늘날까지 전승된 것으로 보인다.
백제왕권은 웅진 토착세력의 횡포를 무력화시키는 방법이 부여로의 천도다. 부여에 존재한 토착부족의 신화가 무왕조의 야래자전설로 보인다. 이를 후기 백제의 신화로 볼 수 있는 것은 백제를 계승한다고 나선 견훤의 탄생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견훤은 백제 강토의 지방민들이 향유한 신화를 차용함으로 빨리 동화시키고 협력을 받을 수 있었다.
이처럼 백제의 건국신화는 수도 천도에 따른 시대, 장소에 따라 기존의 다른 신화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왕권자체가 자주 변모하는 허약성에도 이유가 있지만 여러 신화 차용은 패망한 국가의 비극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국가 잃은 백성의 비극성을 보여주어 국가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시한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