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동성왕(479∼501) 시기의 영역 변화를 중심으로 당시 백제의 대외 정세와 상황을 살펴보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고구려 장수왕의 침공(475) 이후에도 백제가 한성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동성왕 때의 한산성 기록을 통해 확인하고, 더불어 당시 백제는 우두성(춘천), 사현성, 치양성(원주) 등 대개 한강 유역 일대에서 고구려와 접전을 벌였던 사실도 살펴보았다. 그러면서도 고구려의 남진 거점인 청주(중원)와 살수(달천), 치양성 등 충청도와 강원도 남부를 둘러싸고 고구려와 백제, 신라 사이에 공방전이 전개된 원인에 대해서도 새롭게 접근해 보았다.
한편, 남쪽으로는 동성왕 9년의 섬진강 상류 지역인 이림(임실) 진출로 시작하여, 동성왕 17년(495)에는 광주․나주 지역까지 지배력을 행사하고, 이어 동성왕 20년(498)에는 탐모라(강진․해남)을 복속 시키며, 다시 10년 뒤(武寧王 8년)에는 ‘남해의 탐라(제주도)’까지 아우르게 되는 과정과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하여 결국 동성왕 때의 백제는 문주왕과 삼근왕 시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북으로는 한강 유역 일대까지 진출하고, 남으로는 전라도 지역을 더욱 공고하게 영토화 하였음을 확인하였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