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무령왕의 개인적 혹은 인간적 측면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무령왕 출생 문제에 대한 전문 연구자들의 논의 정리하고 필자 나름의 의견을 덧붙인 것이다. 무령왕의 아버지는 곤지라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개로왕의 아들로 보여진다. 그의 모친이 곤지의 아내가 되어 왜에 가는 도중 출생하였고 아마도 출생 후 생모의 손을 떠나 한성으로 돌려보내진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나이 15세쯤에 한성마저 함락되었으므로 어린 시절과 성장기가 순탄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금방 짐작이 된다. 또 일본서기에 무령왕이 개로왕의 아들이었다는 기록을 부인할 적극적 근거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개로왕 아들설에 동의한다.
무령왕이 일본 북큐슈 지방의 각라도에서 출생하였다는 기록 역시 신빙할 수 밖에 없다. 무령왕 출자문제와 묶여진 자료일 뿐 아니라 461년(혹은 462) 곤지의 도왜, 그리고 이 시기 무령왕의 출생이라는 사건이 서로 합치되는 점에서 관련 사료를 긍정적으로 검토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료상의 각라도는 오늘날 사가현 진서정에 연안에 있는 가당도로 보인다. 섬이름이 모두 가카라시마로 같은 이름이라는 점, 가당도의 고대 왕 출생전승, 현지의 입지적 여건 등과 관련 일본서기 기록의 이 부문을 문면대로 읽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무령왕 이후 이 섬을 지나던 백제 사람들이 이 섬을 가리켜 임금님의 섬이라 불렀다는 것도 자료로서의 생생한 느낌을 준다.
삼국사기는 무령왕에 대해 인자관후하여 민심이 귀부하였다고 특별히 극찬의 평가를 하였다. 미목여화의 인물이 인자관후하기 까지 할 수 있을까, 이것은 인간 부여사마의 수수께끼의 하나이다. 백제국의 국왕에 오르기까지 무령왕의 세월이 험난한 길이었음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싶다. 그렇기 때문에 무령왕의 출생과 관련한 복잡한 사연은 그가 경험할 인생의 험로를 예고한 것처럼 보인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