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사료에 입각하여 백제왕 기록을 추출하여 그 정체와 더불어 그들의 역할과 활동 상황의 자취를 살펴보았다. 백제왕은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서 멸망한 뒤, 일본에 남은 의자왕의 왕자 선광의 혈맥을 이은 후손으로서, 망명한 백제유민들과 더불어 일본조정의 문화전도자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씨족이다. 선광왕의 후손들은 백제왕이란 칭호를 써오다가 지통왕대부터는 이를 성씨로 내리는 파격적 조치를 받게 된다.
이로부터 약 200년간 일본사료에는 240여건의 기록이 남아있고 실지 등장 인물은 66명에 이른다. 그중에 일본황실과 인척관계에 있는 예도 있고 관무천황은 백제왕은 짐의 외척이라고 공언한 바도 있다. 이들은 궁중의 요직과 변경의 군사책임과 지방의 수령직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직책을 담당하고 학술, 문화 전수에도 많은 공헌을 하였다. 이는 백제왕의 직손뿐 아니라 선대에 이주해 백제왕손의 후예임을 자처하는 씨족이나 유명한 역사인물의 후손 등이 그 주역이었다. 또하 백제라는 국명을 붙인 성씨는 이외에도 기미, 아소니, 스쿠네 등이 있으나 이러한 사성은 8세기 후반경부터 비롯된다.
9세기 후반, 백제 망국이전 들어간 백제왕 후손을 표방하는 성씨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백제망국 이전의 백제왕계에 뿌리를 구하려는 비조호조가 있다. 이들은 후에 구다라노스쿠네의 사성을 받는데 그들의 선조는 백제 비유왕에 줄기를 대고 있다.
귀수왕의 후손임을 자처하는 신흥씨족으로서는 스가노아소미계가 있다. 이때 통합된 씨족으로는 후지이(葛正), 후나(船), 쓰(津)의 3씨가 공동조상으로서 귀수왕의 손자인 왕진손이 일본조정에 건너와 일본국 문화를 일으킨 주역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