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부여족이 분파하여 세운 고대국가로 백제의 왕실에서 숭앙된 건국신화에는 어떤 식으로든 부여의 신화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본고는 이러한 전제 하에 백제본 동명신화라 할 수 있는 백제 건국신화에 대한 재구를 시도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부여의 건국신화인 동명신화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하여 중국 사서인 양서, 수서, 북사 등의 기록을 통해 백제의 선조가 부여의 동명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었으며 그 결과 부여의 동명신화가 당시 부여족 공동의 시조신화로써 기능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볼 때, 백제의 건국신화에는 분명 부여의 동명신화가 그 기저를 형성하고 있었을 것이다.
백제 건국의 시조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백제의 시조를 온조로 보던 시각에서 탈피하여 설화상으로 온조의 형으로 설정되어 있는 비류를 시조로 확립하여 보았다. 삼국사기 등의 기록에 의하면 백제 왕실에서는 두 가지 제의가 행해지는데 바로 동명제의와 구태제의가 그것이다. 그런데 부여의 동명신화가 부여족 공동의 시조신화로 기능하였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백제의 동명제의를 통해서는 부여의 동명신화가 전승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백제의 구태제의를 통해서 숭배된 시조 구태가 누구인가가 문제가 된다. 필자는 사적고찰을 통하여 구태를 비류와 동일인물로 파악하였다. 결국 백제의 건국시조는 온조가 아닌 비류이며 따라서 백제의 건국신화는 온조설화가 아닌 비류설화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백제의 건국신화에는 부여의 동명신화가 기저를 형성하고 있다고 보이므로 삼국사기 비류설화에 대한 기록과 더불어 부여 동명신화를 참고하여 백제의 건국신화인 비류설화의 본래적 모습에 대한 재구를 할 수 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