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아막성의 위치와 주변 환경
1. 자연ㆍ지리적 환경
2. 고고학적 배경
3. 백제의 옛 가야 지역 진출과 교통로
III. 아막성 전투의 전개 과정과 진출 방향
1. 무왕의 등장과 아막성 전투
2. 백제의 남강 유역 진출
IV. 맺음말
요약
阿莫城(남원 운봉)은 백제가 南江 일대의 가야 지역 즉, 소백산맥을 넘어 경상도의 신라 지역으로 진출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주요 교통로 내지는 공격로였다. 그러므로 남강 일대 내지는 가야 지역으로 진출을 꾀하는 백제나, 또 역으로 이를 막아야 하는 신라에게 아막성(운봉)의 존재는 반드시 필요한 지정학적 요충이었다. 따라서 백제는 무왕 3년(602)에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 그런데 종래에는 아막성전투를 武王이 주도하였고, 그 결과 이후 무왕과 귀족 세력 사이에 정국 운영에 관한 타협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하지만 이 기사는 『삼국사기』무왕 때 기록 중 첫 번째라는 점과, 당시 무왕이 몰락한 왕족 출신으로 지지 기반이 전혀 없었던 상태에서 즉위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결코 무왕의 의지에 의해지지 주도된 군사 동원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이 전투는 오히려 威德王(554-598) 이후 백제 정국을 좌우하던 귀족들의 주도적인 의지가 작용하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상황에서 전투로 인해 步騎 4萬이 모두 죽을 정도로 대패하는 인적․물적 손실이 백제 사회에 초래되었다면, 그 영향이 백제 정국에 미치는 효과 즉 사회적인 혼란은 실로 컸을 것이다. 따라서 전쟁을 주도한 귀족 세력들에게는 책임 문제로 국정을 운영하는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이를 계기로 武王은 서서히 왕권을 강화하였던 것이 아닌가 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