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의자왕의 즉위와 대외관계의 변화
1. 대야성 함락과 가야고지 장악
2. 여제연화와 당항성 공격
III. 삼국항쟁의 격화 전선의 확대
1. 경북 내륙지역 진출과 의직의 활약
2. 도살성 전투와 그 추이
V. 맺음말
요약
의자왕은 즉위 후 왕권강화를 바탕으로 국내정치의 안정과 唐과의 우호관계를 도모하면서 신라 공격에 집중하였다. 의자왕은 642년 직접 군사를 이끌고 彌猴 등 40여 성을 함락하여 낙동강 西岸의 경남지역 대부분을 장악하였으며, 곧이어 옛 가야지역을 통괄하는 重鎭인 대야성마저 함락하였다. 또한 의자왕은 고구려와 화친관계를 맺고 신라의 對唐交通路인 당항성을 함께 공격하기도 하였다. 백제와 신라는 주로 옛 가야지역에서 밀고 밀리는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의자왕은 加耶故地의 대부분은 백제가 장악한 후 나제통문을 거쳐 김천과 구미 방면의 경북 내륙지역으로 진출을 시도하였다. 특히 백제가 648년에 상주지역의 腰車城 등 10여 성을 차지하면서 무왕과 의자왕 2대에 걸쳐 정력적으로 추진한 신라 공격은 정점에 이르렀다. 의자왕 집권 전반기에 백제는 곳곳에서 신라와 치열을 접전을 벌이면서 동방과 북방으로 영토를 넓혀 갔다. 전쟁의 주도권은 백제가 장악하였으며, 신라는 수세에 급급한 상태에서 전력의 열세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백제는 요차성을 장악한 후 자만심에 취해 있다가 대야성과 그 주변의 20여 성을 상실하였다. 의자왕은 전열을 가다듬고 649년에 군대를 북쪽으로 돌려 진천의 도살성을 공격하였다. 도살성 전투는 신라군의 승리로 끝나 진천-청주 보은을 연결하는 교통로 확보에는 실패하였지만 청주와 진천, 청원의 일부 지역을 백제가 차지하였다. 의자왕은 도살성 전투 이후 대략 5년 동안 신라와 소강상태를 유지하였다. 이는 당 태종이 649년에 죽은 후 당과 삼국 모두 정국의 추이를 관망하였기 때문이다. 신라는 唐에 자주 사절을 파견하여 백제와 고구려의 침입을 중지하도록 외교적 압력을 가하였다. 백제는 唐의 강경한 입장을 확인한 후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고구려와의 연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의자왕은 唐의 압박이 강화되자 653년에는 그 동안 소원한 관계에 있던 왜국과 우호관계를 회복하였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