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초기의 정치운영이 왕과 귀족세력 중 어느 일방의 독단이 아니라 쌍방의 의사소통과 상호의 견제와 균형에 의한 분권적인 구조로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十臣會議와 諸佐會議는 당시 대표 지배세력의 회의체로 존재하며 통치자인 왕의 독단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왕은 친왕적인 존재인 右輔와 ‘內臣佐平’을 통해 회의체를 제어하려고 했을 것이지만, 十臣과 諸佐세력 역시 그들의 대표인 右輔와 內臣佐平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더욱 확대하려 했을 것이다. 결국 백제 초기 회의체의 존재는 통치자인 왕과 대표 지배세력 사이의 타협의 산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왕과 지배세력의 회의체가 공존하는 구조에서 정치운영은 어느 일방의 결정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쌍방의 의사소통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쌍방의 의사소통에 의한 정치운영은 자연히 분권적인 정치구조와 맞물려 순환하게 될 것이다. 분권적인 정치 구조에서 왕과 귀족세력 사이에는 국가의 중대사를 둘러싸고 충돌의 소지가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首席佐平으로서 귀족세력을 대표하는 동시에 또한 친왕적 존재이기도 한 內臣佐平은 왕과 귀족세력 사이의 경계인으로서 완충기 내지 융합제의 역할을 하면서 효과적인 정치운영이 유도되고, 나아가 이를 통해 일방의 독점이 아닌 균형 잡힌 분권적인 정치구조도 유지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분권적인 구조는 南堂의 존재를 통해서도 유지되어졌을 것이다. 남당에서 이루어진 국왕의 ‘儀式을 통한 정치’는 일방적이고 강제적인 독점 전략이 아니라 의식이라는 쌍방적이고 상징적인 통로를 통해 이루어지는 연합의 정치 전략이다. 결국 백제 초기의 정치운영이 ‘회의를 통한 정치’와 ‘의식을 통한 정치’에 의해 이루어졌거니와, 왕과 지배세력 사이의 분권적인 구조도 회의체와 남당의 존재에 의해 지속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