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관․김헌용)
1. 서론
2. 중국과 백제 유민 관련 금석문
3. 예식진 묘지의 내용과 백제
4. 결론
요약
所有研究韓國古代史的學者都指責材料的貧乏. 其中, 特別是百濟史與高句麗和新羅史相比, 文獻資料更加貧瘠. 正如人們以往所熟知的文獻史料《三國史記》和《三國遺史》是高麗時代以後編篡的, 主要依據是與韓國三國時代同期的中國各朝代和國別史的本紀和列傳, 這是最基本的常識. 因此, 學者們不得不利用存在很多問題的日本史.
최근 중국 서안에서 출토한 예식진 묘지는 백제사 연구를 보충해 줄 중요한 사료이다. 이 묘지의 예식진과 대응이 가능한 인물은 『구당서‧소정방열전』에 나오는 백제대장군 禰植이다. 즉 예식진과 예식은 동일인물이다. 예식은 백제 의자왕을 생포하고 당에 투항한 장수이다. 그 공로로 당나라에서 고관을 역임했다. 예식진은 웅진도독부에서 백제 좌평을 역임할 때 당과 왜의 외교에 적극적으로 개입했으며, 당과 신라의 싸움 속에서 인질이 되는 쓰라린 경험을 하기도 했다.
본고에서는 또한 禰軍이 예식진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예군은 백제 고토에 설치된 웅진도독부 활동 이외에 당에서의 종적은 전혀 알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그가 예식진과 동일인물일 가능성은 적다. 예식진 묘지의 발견으로 문헌 속 ‘예식’과 ‘예군’ 의 기록에서 ‘예’가 성이고 ‘식’과 ‘군’은 이름임이 명확해졌다. 그리고 『삼국사기‧신라본기』와 『일본서기』에서 백제사마 예군을 ‘장군’ 등으로 부르는 오류를 교정할 수 있었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