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문관사림? 잔권중에 보이는 「무위백제왕조」와 「무위신라왕조」를 해독하고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정보를 다른 사료와 대조검토함으로서, 태종기 대고구려전쟁 발발에 이르까지 한반도삼국과의 외교경위를 고찰했다.
「무위백제왕조」는 정권 19년 정월 하정사(賀正使)로서 파견된 부여강신이 당에서 백제로 귀국할 때 가지고 온 국서이다. 「무위신라왕조」의 경우도 같은 해 신라의 하정사와 당측의 장원표 및 단지군이 함께 2월에 신라로 건너오면서 가져온 국서로 볼 수 있다. 신라, 백제 양국의 위치관계를 통해서 보면 당에서 신라로 파견된 사절을 백제영역을 통과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당은 우선 백제에게 고구려 정벌의 뜻을 전하고 그 다음달에 신라사를 파견하여 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당의 2건의 국서를 보내기까지는 국제관계를 배제하고 생각할 수 없다. 중국과 고구려의 대립관계를 수대이래로 지속되었고, 당태종대에 들어와 더욱 심각해졌다. 이러한 국제환경 속에서 백제와 신라는 당과의 대립관계를 피하기 위해 각각 사신단을 파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