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촌강 전투 이후, 일본의 외교 노선은 신라와 협조하는 방향과 당과도 협력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 교섭을 재개했던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것은 자신들이 가담한 전쟁에서 연합해 당에 대적한 백제, 고구려가 쓰러지는 것을 본 일본 조정에 있어서 당의 위협이 절대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정세적으로 볼 때, 종속적인 형태였다고 해도 당에 협력한 쪽이 무난하다고 하는 의견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면서, 동아시아의 동란이 조정 지배체제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던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임신의 난을 동아시아의 동란과 연결하여 파악하였다. 임신의 난은 권력 투쟁이 그대로 황위계승 문제로 이어졌다는 점에 커다란 특징이 있다고 강조하였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