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기 후반에 왜정권이 임나를 일괄해서 지배했다고 하는 통설적인 이해는 木劦滿致(목협만치)의 사료검토를 비롯해서 5세기 중엽에 백제 정권을 구성한 木羅斤資(목라근자), 木羅滿致(목라만치) 부자에 의한 임나지배 문제까지 크게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만치의 임나지배의 정당성은 동성왕에게 보장받았는데, 왜왕이 동성왕을 책립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파악하였다.
5세기 후반의 백제왕 계보의 복원에 대해서 『남제서』, 『백제신찬』의 신빙성을 인정하여, 문주왕은 비류왕의 동생이고, 동성왕의 외조부였던 것으로 파악하였다. 여기서 동성왕이 이복형인 무령왕보다 먼저 세워져 왜왕에 의해 책립되는 하나의 요인으로 파악하였다.
문주왕에 대해서는 계보와 함께 재위 年數도 고려하여, 480년 3월 남제로 보낸 사신이 문주왕에 의한 것으로 보았다. 문주왕대의 기록을 통해 당시 백제 지배층 내부에 대외정책의 선정을 둘러싼 파벌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을 밝히고, 이것을 계기로 왕위 계승문제까지도 관여하였던 것으로 판단하였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