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化改新(대화개신) 때 내조한 백제왕자 豊璋(풍장)이라는 인물에 주목하여 풍장을 둘러싼 왜국과 백제의 관계에 대해 검토하였다. 풍장은 백제 의자왕의 아들로 ?일본서기?에 의하면 舒明(서명) 3년(631)에 왜국에 인질로 건너온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기사에는 커다란 모순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속일본기』 기사를 신뢰하면 643년에 인질로 왜국에 왔던 것으로 파악하였다. 또한, 풍장은 翹岐(교기)라고 기록되어 있는 인물과 동일인물로 파악하였다.
풍장이 인질로 오기 전해인 642년은 당·신라와 고구려·백제의 본격적인 항쟁이 급전환된 동아시아사에 있어서 커다란 변혁기였다. 이러한 정세변화에 대해 왜국은 백제의 신라영역 침공을 지지하는 외교노선을 선택했다고 파악하였다. 이러한 선택의 배경에는 임나부흥을 고집하는 왜국의 전통적인 외교로, 백제의 임나영유 계승을 대신하여 백제로부터 왕자 豊璋·禪廣을 인질로 요구했던 것으로 파악하였다.
백제 태자 풍장의 入侍(입시)는 왜국의 對조선외교의 커다란 전기를 보여주는 중요한 것으로, 이러한 선택이 백촌강 패전으로 이어지는 왜국의 對백제 외교를 결정했다고 파악하였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