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비성을 둘러싼 문제점을 주로 문헌사료를 통해 검토하였다. 사비성의 천도는 웅진천도 이후 조금 안정된 500년경부터 기획되어 538년에 이르러 실현되었다. 천도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좀 더 넓게 계획적인 왕도에 안정화하고 다시 고구려와 대항하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과 연결되는데 결론적으로 5부의 구획을 넓히고 부항제를 둘 수 있는 왕도를 만들려고 한 것으로 말할 수 있다.
한성시대와 웅진시대의 경우 발굴조사를 통해 왕궁의 위치를 왕성내로 추정할 수 있으나, 사비성의 경우 부소산성의 성외 남측으로, 앞 시기와는 다르다. 사비성의 특징으로 먼저 왕궁이 성외로 나가는 것, 그리고 그것과 불가분의 관계인 나성이 출현하는 것, 여기에 부항제의 채용으로 들 수 있다.
중국 건강의 경우 수도 전체를 감싸는 성벽은 없었다는 견해가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사비성의 경우도 나성은 결코 전체를 두르는 것이 아닌 점에서 공통된다. 따라서 백제는 남조와의 관계에 의거해 도입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