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좌평의 설치, ‘6좌평 18부’의 성립과정, 18부의 임기제와 관원구성에 대해서 검토하였다.
7세기대 좌평은 활동 폭이 한정되었으며 상좌평-6좌평, 대좌평-임무가 없는 좌평 등으로 분화했다. 6좌평의 설치시기는 7세기 무왕대(600~641)중엽 이후로 추정된다. 6좌평은 왕권과 22부사와의 사이에 매개역할을 하였다. 그 이외에 6좌평의 설치는 관위와 관직의 분리, 관사조직의 수직적체계화라는 의미도 있었다.
백제의 중앙관제는 중국의 『주서』, 『북사』 백제전에 보이는 ‘5좌평-22부’에서 『한원』에 보이는 ‘5좌평-18부’를 거쳐, 『구당서』 백제전에 보이는 시기에는 ‘6좌평-18부’로 바뀌었다. ‘6좌평-18부’는 내관과 외관이 각각 9부인 점에서 공통되고, 각각의 좌평은 18부 중에 몇 개의 통속기관을 갖고 있었다. 특히 3명의 좌평은 합계 16부를 통솔하고 있어서 좌평의 관료화에 따라 왕권의 외관에 대한 장악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편, 7세기 당의 건국이후에 설치된 6좌평은 22부에서 18부로 관사조직이 개편되고, 관위와 관직의 분리, 좌평의 정원이 폐지되었다. 22부사는 백제 관사조직의 완성 형태라면, ‘6좌평-18부’는 한 단계 진전된 형태였다고 할 수 있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