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고구려의 남하와 백제의 대응
III. 동성왕대의 대외관계
IV. 무녕왕대의 대외관계
V. 성왕대의 대외관계
VI. 맺음말
요약
웅진시대 백제사연구의 성과와 과제를 대외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웅진시대란 비록 64년 밖에 되지 않은 짧은 시기이지만 2왕이 시해되는 등 5왕이 즉위한 격변의 시기였다. 이러한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백제의 정체성과 체제를 재정비하는 데 상당한 대립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하겠다. 하지만 외적인 변수 즉 고구려의 남하라는 국제 정세가 주요 변수로 작용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내부의 대응 방식을 정리하는 것이 이 시대를 보다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연구 성과를 정리하여 보았다. 먼저 웅진시대 정치적 동향 및 대외관계를 규명하기 위해선 곤지계의 동향에 대하여 보다 진전된 연구가 필요하다. 곤지가 461년 왜에 파견되어 정착한 지역과 그 곳에서의 활동을 규명하고, 이후 곤지의 귀국 및 곤지계인 동성왕과 무녕왕의 연이은 즉위가 가능한 이유를 곤지계의 정치적 동향과 관련하여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최근 주목되고 있는 영산강 유역의 전방후원형분의 축조도 이 곤지계의 동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를 규명한다면 국제 관계 및 정치 세력의 움직임의 연구에 보다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음으로 웅진시대 백제 영역의 문제는 史書에 등장하는 지명을 중심으로만 규명하는 방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즉 고구려의 한강유역 점령과 지배방식, 그리고 고구려의 남한강 루트를 통한 진출과 지배 형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영토란 단순히 점령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배를 하는데 필요한 기회비용 측면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고대사회에서 토착세력의 동향이 항상 변수로 작용한 것은 직접 지배에 따른 비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식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가 해결될 때 비로소 한강 유역을 둘러싼 백제와 고구려의 공방에 보다 구체적인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