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한 견수·견당학생, 학문승들이 일본 율령국가의 법제도 및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왜국이 사제(師弟) 관계를 이용한 기능 전습 방식은 그 직전 불교수용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였다. 그 가운데에서도 飛鳥寺(비조사)에서는 도래승과 기능자를 스승으로 모시면서 다양한 학문 기능자가 양성되었다. 게다가 창건기의 비조사는 소아계의 황자 육성과 관련된 시설로 승려 민(旻)이 중신겸족, 소아입록 등에게 ?주역?을 강연한 ‘旻法師之堂(민법사지당)’도 이곳 비조사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비조사에는 전문기능자의 양성부터 지배층의 교육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와 계층을 대상으로 한 기능·지식의 전습이 사제관계를 통해 행해졌다. 이러한 점을 보아도 비조사가 왜에 있어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였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 그 후 일본 율령국가는 기술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조직을 관인체제에 편입시킨 것에 비해 중국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일본고대의 기능전습의 방식은 견수사, 견당사의 시대를 맞이해도 중국과 직접 연결되지는 않았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