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전설화 인물로서의 의자왕
Ⅱ. 피침 직전 심리전 공작의 설화적 흔적
Ⅲ. 도성 함락과 조룡대전설의 성립
Ⅳ. 의자왕에 대한 부정의식이 낳은 ‘삼천궁녀’
Ⅴ. 부정적 인물상의 지역전설적 확장
Ⅵ. 사실과 전설화의 차이점과 전설표현의 초점화
Ⅶ. 전설의 전승과 지역적 배경의 특성
요약
의자왕전설은 정치성을 띠는 소재보다는 일상적인 소재,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포괄적인 내용, 그리고 명분성의 내용보다는 인간적이고 본능적인 내용을 더 쉽게 기억하는 방향에서 설화성이 강화되어온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현지 증거물과의 관련성을 강하게 띠면서 전설적 표현과 전승력을 좀 더 강하게 유지해온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전설 속의 의자왕은 망국 이후 늘 실제보다 더 크게 부정되는 추세를 벗어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고, 부정적인 모습을 더욱 강하게 부각시켜 표현하고자 하는 설화전승자 의식의 큰 흐름을 비켜나기가 어려웠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책임자라는 의자왕전설의 유형성과 전승에 영향을 준 요인만은 아니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 작용한 또 하나의 요인으로서 백마강 일대가 지닌 독자적인 천혜의 ‘경관조건’을 빠뜨릴 수 없다. 의자왕 관련 설화가 거의 현지전설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이런 특징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부여 일대의 수려한 산수는 이미 이곳에 수도를 정하기 전부터 수로 왕래를 통하여 주목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백제가 망한 이후에는 역사 유적지라는 이름이 더해져 경승지로서의 이름이 더 높아졌을 것임은 역대 식자들이 이곳을 찾고 남긴 무수한 시들로써 잘 알 수 있다. 뒷시대로 올수록 식자층은 물론 유람객들의 부여에 대한 관심은 더욱 넓어져 그야말로 “행락을 좋아하는 이들이 천리를 멀다 않고 찾아오는” 명승지가 되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이곳은 강에서 올려보는 시야 또한 넓게 열려있다. 부소산 아래는 옛날부터 금강 수운의 길목이었으며, 때문에 누구든 어느 때든 쉽게 다가갈 수 있고 자연을 완상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처럼 산에서 굽어보거나 강에서 올려보거나 한눈에 보이는 곳이 자연으로서의 ‘낙화암’의 위치이다. 바로 이처럼 어디에서는 조망하기 쉬운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는 점이 의자왕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모든 전설들을 ‘음주유흥’쪽으로 상상하게 하고, 더욱 좁게는 낙화암전설로 집약시켜 상상하도록 하는 데에 좋은 조건이 되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전설과 그 전승 배경과의 이러한 함수관계가 부여 의자왕전설에는 깊이 작용해왔고 이런 현상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것이 위 의자왕전설이 지니는 변할 수 없는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