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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 왜·백제관계와 나제동맹(五世紀の倭・百濟關係と羅濟同盟 )

  • 분류 문헌 > 정치·외교
  • 권호수 7
  • 저자 熊谷公男 (웅곡공남)
  • 발행일 2007
  • 게재지 アジア文化史硏究
  • 발행처 東北大學文學院文學硏究科

목차

はじめに (머리말)
1. 五世紀における倭と朝鮮諸國
(5세기 왜와 조선제국)
2. 五世紀初頭の朝鮮半島と倭, 百濟關係
(5세기 초기의 한반도와 왜, 백제관계)
3. 羅濟同盟の結成と朝鮮半島をめぐる國際關係の變化
(나제동맹의 결성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의 변화)
4. 熊津遷都後の倭·百濟關係と羅濟同盟
(웅진천도 후의 왜·백제관계와 나제동맹)
おわりに (맺음말)

요약

『삼국사기』에서 전하는 나제동맹이 5세기 왜와 백제의 관계에 끼친 영향에 대해 검토하였다. 4~5세기의 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는 각자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주체성을 가지고 주변국과 제휴 혹은 항쟁과 같은 행동을 지속했던 것으로 파악하였다.
5세기 전반을 전후하여 동아시아 제국의 외교관계에 커다란 전환기가 있었다. 왜는 이른바 ‘왜의 오왕’이라 불리는 시기로, 중국의 송과 교류를 하게 되었다. 가야 특히 금관국은 왜와 밀접하게 교류를 해왔으나 신라에 병합되면서 상대적으로 그 지위가 저하되었다. 백제는 신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나제동맹을 체결하는 한편 곤지를 왜에 파견하였다. 이 시기 곤지의 파견은 군사동맹의 성격보다는 고구려의 공격으로 타격은 입은 후 왜와의 관계를 수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파악하였다.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한 5세기 후반은 백제의 내부 사정은 혼란스러웠으나, 신라와의 관계는 상당히 우호적이었으며, 나제 동맹이 효과적인 기능을 하던 시기였다. 왜국은 영산강유역의 전방후원분을 통해 볼 때, 영산강유역의 세력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던 것으로 파악하였다.
나제동맹은 6세기 초에 결혼동맹으로까지 이어졌으나, 신라의 발전과 영토 확장으로 인해 군사적 파트너로서 백제와의 유효한 기능을 하고 있던 나제동맹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한편, 그 동안 왜와 백제의 관계는 군사적 동맹관계로 이해되어 왔으나, 백제에 있어서 군사적 파트너는 왜보다 신라였던 것으로 파악하였다. (필자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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