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8년에 성왕이 천도한 이후 백제의 왕도였던 사비에서 발굴된 왕흥사지의 청동사리용기 명문과 능산리 사원지의 사리함명은 편찬사료에 없는 백제불교의 내실을 여실이 전해주는 자료로, 이를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두 명문의 중심내용은 전자는 577년 백제 창왕이 죽은 왕자를 위해 탑의 주심을 세운 것이고, 후자는 창왕 14년에 위덕왕의 누이가 아버지 성왕의 명복을 비는 사리를 매납했던 것이다. 따라서 두 사원은 위덕왕이 국왕 일족을 공양하기 위해 건립했던 것이다. 이러한 효 사상과 사원 건립 배경은 백제에 불교경전과 박사 등을 파견했던 양 등의 중국에서 그 기원을 찾았다.
양의 무제는 『孝思賦(효사부)』에서 자신이 부모를 위해 대경애사와 대지도사를 건립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백제에서는 위덕왕의 아버지인 성왕이 양의 황제를 위해 대통사를 건립했다고 하며, 양에서 수용한 여러 서적류를 통해서도 불교과 관련된 효사상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후 왕흥사와 능산리 사원을 건립했던 위덕왕대가 되면서 효 사상은 백제 왕권을 받쳐주는 사상으로 되고, 결국에는 백제 불교를 직접 수용했던 왜에도 전해졌던 것으로 파악하였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