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제기
1. 웅진 천도와 정치적 혼란
2. 동성왕·무령왕대 가야 관련 세력의 대두
1) 남방영역의 확대
2) 가야 관련 세력의 대두
3. 동성왕·무령왕대 지배세력의 재편성
1) 왕후제의 변화
2) 좌평제의 변화
맺음말
요약
백제의 웅진천도가 아무리 준비없는 천도였고, 백제 왕실이 새로운 세력을 필요로 하여 예기치 못한 지방세력이 왕과 연결되었다고 하더라도, 과연 지방세력이 그렇게 갑작스럽게 정권의 전면에 나서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였다. 백제는 동성왕의 즉위를 계기로 천도 직후인 문주왕과 삼근왕대의 정정(政情)의 불안을 수습하며, 새로운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동성왕의 즉위로 정국의 안정을 기한 백제는 한성의 함락으로 물적․인적 기반인 한강유역 상실을 만회하기 위해 남부지방으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마한의 잔존 세력이 남아 있던 영산강유역으로 세력을 확장하게 되면서 한강유역의 상실에서 온 경제적 손실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웅진 천도 이후 백제의 영향력으로부터 이탈을 꾀하면서 독자노선을 추구하던 가야를 견제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가야를 견제하기 시작하면서는 이곳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세력들, 즉 사씨 등이 새롭게 힘을 얻어 정국운영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사씨 등은 웅진 천도 이후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지방정치세력이 아니라, 일찍부터 백제의 왕실세력과 연계를 가지고 있다가 웅진 천도 이후 정치적환경과 정치세력의 변동에 따라 등장한 것이다. 특히 이들은 근초고왕․근구수왕대 정복전쟁의 수행과 영역의 확대 과정에서 왕권의 기반 및 연관성을 갖고 있던 세력들이다. 웅진 천도 이후에 가야지역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면서,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세력들을 재등용된 것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이들이 정국의 핵심으로 등장하게 되면서 동성왕․무령왕대의 정치적 환경은 어떠한 변화를 겪게 되었는지 살펴보았다. 동성왕은 지배층 재편성을 완성시키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작제적 성격의 왕후제를 적극 활용하고 있었으며, 또한 좌평의 직능 분화의 과정을 통해 관료제를 진전시키고 있었다. 이러한 동성왕대 좌평제의 분화는 무령왕대에도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었다. 그 결과 무령왕대에는 이러한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양서』백제전에서 보듯이 ‘갱위강국’을 칭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성왕대에 새로운 정치를 전개할 수 있는 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