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온조 시조 전승과 비류 시조 전승
Ⅲ. 온조 시조 전승의 변화 과정
Ⅳ. 맺음말
요약
백제 건국신화의 형성과 그 변화 과정을 몇 단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첫 단계는 비류신화 속에 온조가 동생으로 삽입된 시기이다. 『삼국사기』가 전하는 백제 건국신화를 검토해 보았을 때, 우태-비류로 이어지는 시조 전승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온조왕대에 비류세력을 통합하고 국가로서의 기틀을 다지게 됨에 따라 온조 중심의 건국신화가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보인다. 백제 건국신화의 초기 형태는 비류시조 전승에 더 가까웠으나, 온조가 미추홀 세력을 결합하면서 두 시조 전승의 결합이 이루어지고 비류계 세력을 껴안기 위해 비류를 兄으로 하는 형제관계가 신화 속에서 생성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단계는 동명-온조로 이어지는 건국신화의 형성 과정이다. 비류 시조 전승에 보이는 해부루-우태를 온조 세력의 출자로 할 수 없기에, 부여계의 시조인 동명을 조상으로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 온조가 동명사당을 세우며 부여인 동명의 후예임을 천명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온조 건국신화의 정착은 근초고왕대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비류 시조왕” 전승은 이에 앞서 비류계로 추정되는 고이왕대에 이루어짐으로써 『서기』속에 함께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 단계는 동명-온조로 이어지는 백제 건국신화가 주몽-온조로 변개되어 현존하는 모습으로 정착되는 시기이다. 그 변개된 시기는 구체화할 수 없으나, 신라 통일 후 역사 정리 작업 과정에서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온조나 비류 모두 부여계 세력으로서 백제의 건국신화는 부여의 계승성을 표방하였다. 그리고 백제 국가의 발전 과정에서도 줄곧 부여의 계승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백제 멸망 후 부여의 동명을 고구려의 추모로 이해하는 인식이 반영됨에 따라 『삼국사기』에 주몽-온조 전승이 건국신화로 정착되게 됨을 추적할 수 있었다. 따라서 백제 건국신화에 보이는 고구려 계승성은 후대에 동명을 주몽으로 해석하게 됨으로써 윤색되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백제의 건국신화를 논의함에 있어서 백제 초기기록의 영세성과 그들 문헌이 가지는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고고학적 발굴과 연구 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어야 했으나, 문헌 검토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