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수도의 의미-
2. 한국역사에 있어서 首都의 기능과 遷都論
3. 한국고대사에 있어서 遷都過程과 그 補完策
4. 맺음말 -한국 고대사에 있어서 천도가 지닌 역사적 의미
요약
수도 이전은 전란으로 함락된 경우 외에는 신중을 기함으로써 천도의 불가피성과 충분한 준비과정을 필수적으로 갖게 된다. 고구려의 평양 천도가 90여년간의 준비과정 끝에 이룩되었지만, 천도 이후의 심각한 사회문제는 상상을 초월하였다. 따라서 장수왕은 이러한 천도 후유증을 해결해야 할 어려움에 직면하였다. 결국 장수왕은 천도를 단행하여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였고 천도 후 난제를 극복하는데 고민했던 현명한 군주였으나, 천도 후에 일어날 여러 가지 문제를 미처 생각하지 못한 愚를 범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그는 북위와의 외교로 현실 타개의 길을 찾았고, 백제 정벌(한성 함락)로 국민의 불안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南遷은 중국 침략을 저지하는 요동을 포기함으로써 광대한 북방 영토(만주)를 放棄한 결과가 되었으며, 그 후 수․당은 고구려가 그들이 무서워 남쪽으로 도망간 것으로 판단하여 고구려 침략구실을 제공한 결과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웅진․사비 천도 역시 한강하류 유역을 포기함으로써 라․려 간의 쟁패전이 가속화되어 신라의 北進을 가능케 하였다. 한편, 통일신라 역시 제․려 잔민의 견제와 지방세력을 억압하기 위해서 5소경을 두었다. 북원경을 두어 고구려 세력을 견제하였으며, 서원경과 남원경을 두어 백제 잔재를 극복하였다. 그리고 중원경은 새로운 문화의 도시로 육성하여 국민의 통합과 지역의 융합을 꾀하였다. 압록강에 기반을 둔 고구려, 한강을 터로 한 백제, 그리고 형산강을 둔 신라는 결국 ’한강 쟁탈전‘으로 자웅을 다투게 되었다. 고구려는 남으로, 신라는 북으로, 그리고 백제는 자기 자리를 지키려고 싸웠다. 백제는 바로 한강을 중심으로 巍巍大國으로 바다의 왕자가 될 수 있었으나 이를 포기함으로써 약소국이 되었다. 그러나 신라는 이 지역을 확보함으로써 통일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와 같이 한강유역은 ’저울대의 축‘으로 남북을 융합․통일 할 수 있는 통합의 장인 것이다. 따라서 이 지역을 어떻게 유지․관리하느냐가 고대사회의 주인공이 되는 길이었다. 이러한 고대사회에 있어서 수도의 의미나 천도가 지니는 성격은 물론, 그 보완책(부수도의 운영)은 고려 이후 현대까지도 큰 영향을 준 바 되었다. 여기에 과거를 ’다시 보는‘ 오늘의 역사에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이유가 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