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제1기(369년~475년) 고구려와 백제 관계
Ⅲ. 제2기(476년~554년) 고구려와 백제 관계
Ⅳ. 제3기(555년~672년) 고구려와 백제 관계
Ⅴ. 맺음말
요약
고구려와 백제의 대립은 3기로 나누어 살필 수 있다. 양국 간의 전쟁은 369년 고구려 선제공격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초반 백제 우위에서 고구려로 바뀌면서 정국 주도권은 고구려가 장악하였다. 고구려는 신라를 자국 영향권에 편제시켜 백제에 대한 공세를 강화했다. 400년 신라 구원 명분으로 고구려 기병 5만의 낙동강 출병은 고구려, 신라와 백제, 왜, 후연의 연합세력이 가야에서 격돌한 동북아시아 최대 전쟁이었다. 이 전쟁에서는 백제가 고구려군의 회군을 초래하여 무력화시켰다.
평양성 천도 전후 고구려는 왕도의 안정적 확보 차원에서 백제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한층 강화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백제는 남조와 왜는 물론 북위에도 사신을 파견하는 등 외교에 총력을 기울였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결국 475년 고구려는 백제 왕도 한성을 함락시켰다.
476년 이후 고구려는 백제를 신속시키자 왜 조정은 적개감과 위기감이 증폭되었고 백제는 신라와 동맹관계를 구축하였다. 이에 양국은 고구려에 공동대처할 수 있었다. 551년 백제의 한강유역 회복은 나제동맹이 거둔 최대의 결실이었으나 고구려는 황초령과 마운령 일대를 신라에 할양하여 나제동맹을 결렬시켰다. 고구려와 백제는 왜에 불교를 비롯한 선진 문물을 전파하며 왜를 자국편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하였다.
6세기 중반 이후 백제와 신라는 앙숙관계였다. 고구려는 양국을 상대로 모두 공격하는 등 만주, 한반도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642년 연개소문 집권을 계기로 신라는 고구려와 관계 개선을 모색하였으나 당태종의 대고구려 작전으로 인해 연개소문은 백제와 손을 잡았다. 고구려는 당과 연계된 신라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였다. 그런데 갑작스런 백제의 멸망은 고구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고구려와 백제는 동원의 국가였지만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된 전쟁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7세기 중반 당이 고구려, 백제 문제에 적극 개입하면서 양국은 공조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양국은 신라와 당에 각개격파당하는 운명에 빠졌다. 고구려와 백제의 군사적 공조는 300년 가까운 갈등에 비해 겨우 20년에 불과하였으며 동반몰락의 길로 떨어졌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