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한성시대 전기의 영역 변천
III. 한성시대 후기의 영역 변천
IV. 맺음말
요약
백제는 고이왕대에 이르러 중국군현과의 무력충돌을 계기로 연맹왕국을 형성하였다. 이 때 백제는 북으로는 浿河(평산군 猪灘)를 경계로 하여 마식령산맥을 따라 대방군과 접하였고, 동으로는 走壤(강원도 평강)을 경계로 하여 이천ㆍ평강ㆍ철원ㆍ포천ㆍ가평ㆍ양평ㆍ여주를 잇는 선에서 영서말갈과 마주하였다.
백제는 4세기 초에 군현이 축출된 것을 계기로 하여 그 영향력 하에 있던 말갈세력을 복속하였고, 근초고왕대에는 고구려와 격전을 벌인 끝에 대방 故地의 영유권을 일시적으로 확보하였다. 근구수왕대에는 영서말갈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면서 예성강유역의 평산과 금천을 경계로 고구려와 대치하였다.
그러나 진사왕대에 이르러 북한강유역의 말갈지역을 고구려에게 상실하고 말았다. 또한 광개토왕의 남진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임진강 이북지역을 거의 잃었으며, 남한강유역의 말갈지역마저 고구려의 수중에 내주고 말았다. 아신왕대에 이르러 先地를 회복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으나 큰 성과를 올리지는 못하였다.
양국의 대립은 아신왕이 薨逝한 후 소강상태가 유지되었으나, 비유왕의 후반기부터 다시 격화되었다. 백제가 오랜 동안의 수세에서 벗어나 임진강 이북지역을 회복한 것은 개로왕대의 후반기에 해당되는 469년 무렵이었다. 백제와 고구려는 다시 마식령산맥을 경계로 삼게 되었으며, 개로왕은 영서지역의 말갈세력을 회유하여 고구려의 전력 분산을 유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개로왕의 실지회복 노력은 고구려의 대대적인 반격을 초래하고 말았다. 장수왕은 직접 고구려군을 이끌고 내려와 개로왕을 살해하고 한성을 함락하였다. 백제는 한성이 함락되고 고구려의 재침 위협이 상존하였기 때문에 웅진으로 천도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