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문제제기
II. 시행 시기와 그 배경
III. 수작자의 신분과 시행 범위
IV. 웅진천도와 시행범위의 확대
V. 맺음말
요약
백제가 왕ㆍ후제를 실시한 것은 개로왕의 즉위 후 전제적인 왕권의 토대가 마련된 461년을 전후한 시기였다. 개로왕은 백제가 고구려의 남하정책에 밀려 약화되면서 직접지배가 어렵게 된 옛 마한지역 통치를 위하여 왕ㆍ후제를 실시하였다. 담로제가 마한 소국을 단위로 하여 편제된 것과는 달리 왕ㆍ후제는 광역단위로 시행되었다. 개로왕대에 왕ㆍ후제가 시행된 곳은 주로 안성천 이남과 노령 이북지역 사이에 위치한 옛 마한의 중심지역이 대상이 되었다. 백제의 웅진 천도 후 노령 이북지역은 왕ㆍ후제를 대신하여 담로제로 일원화 되었다. 그러나 백제의 혼란을 틈타 자활을 꾀한 서남해지역과 전남 내륙지역은 담로제를 실시하지 못하고 왕ㆍ후제가 시행되었다. 개로왕대에는 지방의 토착세력이 왕ㆍ후로 임명된 사례가 많은 것에 비하여, 동성왕대에는 중앙의 왕족이나 귀족이 주로 책봉되었다. 왕ㆍ후제는 남방지역 토착세력의 기득권을 인정하며 공존하는 방향에서 실행되다가 사비 천도를 전후한 시기에 방군성제가 실시되면서 소멸되기에 이르렀다. 백제의 지배층은 담로제를 실시하지 못하고 왕ㆍ후제가 시행된 서남해지역과 전남 내륙지역을 외방에 위치한 부용국으로 인식하였다. 백제의 차별적인 인식은 6세기 중엽에 전국을 대상으로 하여 방군성제가 동일하게 실시되어 지방통치가 강화되고 변방지역의 토착문화 전통이 약화되면서 사라져갔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