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1. 650년대 당의 대한반도 정책 변화
2. 당의 대한반도 기미지배 정책 수립
3. 안동도호부의 설치와 당 중심의 세계질서
맺음말
요약
본고는 삼국통일전쟁 중에 설치된 기미부주 적용 정책이 어떠한 배경에서 성립되는지 고찰해 보았다. 우선 그를 위해서 당의 한반도 지배전략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과정을 거쳐 어느 시점에서 결정되었는지 그 추이를 밝히는 데 주력하였다.
648년 동맹이 체결되었지만 당태종의 죽음으로 백제·고구려에 대한 공동대응은 사실상 중단되었고, 655년에 들어서야 비로소 긴밀한 군사동맹관계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상의 중심에는 측천무후의 옹립과정에서 고종 즉위 이래 정권을 장악했던 장손무기 일파가 실각하고, 허경종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세력이 정계의 전면에 급부상하는 일련의 사건이 있다. 허경종 일파의 기본 정책은 내부적으로 황제권을 강화하고 그 힘을 대외적으로 팽창시키는 것이었다.
그 단적인 예는 659년 백제정복 준비과정에서 나타난다. 신라에서는 그 이전부터 ‘선공백제’를 요청하였지만 당에서는 목적이 고구려의 정복에 있었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659년 이후 당은 고구려 정복 정복에 앞서 백제를 선공한다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되었고, 그 정책적 변화는 660년 이후 실제적 상황으로 나타났다. 백제 정복 후 그 영토에 기미부주를 설치하게 된 것도 허경종 일파의 구상에서 나온 듯하다.
이와 같은 한반도 지배전략의 수정은 당의 기미지배체제의 완수 과정과 긴밀하게 연계된 것으로 보인다. 당은 고구려 영토에 대해서 처음부터 기미부주로의 편제를 상정하고 있었고, 660년 단계에서 이를 완수하려고 하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따라서 백제의 정복과 기미부주 설치는 고구려정벌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 단계에서의 고구려 정복은 실패하였고, 이는 이후 당의 한반도 지배전략에 또 한 차례의 전략수정을 낳았다. 이것이 신라영토에 대한 계림주대도독부의 설치라고 생각한다. 신라의 반발을 예상하면서도 이를 고집한 것은 결국 고구려영토를 중심으로 한 안동도호부의 설치, 더 나아가서는 기미지배체제의 완성을 목적이 강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당의 의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661년 고구려공격 직전에 있었던 고종의 일융대정악 참관이라 할 수 있다. 고구려 정복이 곧바로 천하 평정을 의미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는 일융대정악을 백제정복 직후, 고구려공격 직전에 만들어 연주했다는 것은 당시 당이 ‘선공백제’를 통해 얻고자 하는 궁극적 목표가 무엇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와 더불어 고종대 만들어진 7개의 악곡들 중 3개가 고구려 정벌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도 예(禮)와 함께 교화의 수단으로 중시된 악(樂)의 상징성을 감안한다면 고구려 정벌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는 더욱 확연해질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