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연구사 검토
III. 백제의 건국 시기
IV. 건국 주체세력
V. 맺음말
요약
백제라는 나라를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에 대해 오랫동안 치열한 논쟁이 이어졌지만 아직도 구체적인 연구결과를 얻지 못했다. 무엇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초기 기록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쪽은 여전히 두터운 신뢰감을 표현하고, 한쪽은 불신의 그림자가 짙다. 그리고 국가의 개념을 정의하고 각종 사료에 적용하는 작업이 더디게 진행된 데다 자의적인 해석이 적지 않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새로운 연구방법론과 관점을 확보하지 못하고 인접학문의 이론과 연구성과를 나름대로 원용하는 데에만 관심을 기울인 점도 문제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분명 그대로 믿기 어려운 기사들이 있다. 예를 들면, 시조 온조왕대에 이미 도읍을 옮기고, 영토를 확정했으며, 마한을 병탄하고, 部제도를 실시했다는 기록이다. 이들은 모두 후대의 사실을 잘못 소급한 기사인 듯하다. 고고학적 해석에 의거하면, 한강유역에서 국가 출현을 의미하는 유적ㆍ유물은 대개 2세기 이후로 편년된다. 아마도 낙랑군이 한강유역에서 정치세력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회유와 억압을 적절히 구사했기 때문일 것이다.
백제를 세운 사람들은 역시 부여ㆍ고구려 방면에서 남쪽으로 이주했을 개연성이 높다. 다만, 부여와 고구려 중에서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하는 점이 문제인데, 부여와 백제의 연관성은 문헌자료에서 더욱 강조되며, 고구려와 백제의 연관성은 고고학 자료에서 특히 인상적이다. 백제의 종족ㆍ문화계통을 분명하게 가르기 위해서는 부여의 생활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화의 속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