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소정지체의 형성ㆍ발전과 영역국가로의 편입
III. 백제시대 고부 지역의 성장과 발전
IV. 신라ㆍ고려의 통치와 지역적 기반의 변화
V. 맺음말
요약
정읍 고부는 마한 54국 중의 하나인 구소국으로 추정되며, 백제가 건국․성장하던 서기 1~3세기 사이에도 마한 연맹체의 일원으로 존속하였다. 하지만 서기 4세기 초에 백제가 전라도 벽골(김제)에까지 진출하고, 근초고왕 24년(369)에 남낙동강 유역과 남해안 일대를 평정하자, 구소(=고사)는 백제의 한 지방으로 편입된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사비시대에는 중방 고사성(고부)으로 지방 제도의 중핵적인 위치와 기능을 수행하면서 백제의 중요한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로서 자리 잡았다.
이러한 고부의 위치는 백제 멸망기까지 존속되었는데, 서기 660년 백제 멸망 후 시작된 재건 움직임의 승기가 바로 서기 661년 3~4월 사이에 전개된 두량윤․고사비성 전투였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 승리를 토대로 부흥백제군은 주류성(부안)에 거점을 정하고, 9월에는 부여풍을 왕으로 옹립하여 새로운 국가인 ‘(부흥)백제국’을 건설하였다. 아울러 서기 663년 8월에 나․당군과 제․왜군 사이의 최후 결전인 백강 해전의 주무대도 고사성(고부)이었다. 이처럼 고사비성=고사=고사부촌은 주류성(부안 위금암성), 피성(김제) 등과 함께 (부흥)백제국(661~663)의 중요한 지역적 기반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저력으로 고부 지역은 당이 옛 백제 땅을 직할 영역으로 삼고자 1도독부 7주 51현 체제로 재현하는 과정에서도 7주의 하나인 고사주로 편제되었고, 백제 시기 이래 지역 거점인 중방 고사성의 전통을 이어받아 정읍, 부안, 고창, 김제를 아울러 전북 서부 지역을 관할에 둔 정치․경제․행정․군사의 중심 도시로 자리매김하였다.
하지만 소위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서 고사주의 지역적 기반은 크게 대산군(태인․정읍)과 고부군(고부․부안)으로 분할되게 된다. 이는 신라가 당군을 축출하고 옛 백제 지역을 차지한 이후 새로운 ‘신라적 통치 질서의 확립’을 위해 ‘고사부리’가 갖는 ‘백제적 유구성과 전통성’에 대해 변화를 주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고려 초기에도 고부는 후백제의 수도인 전주 못지않게 중요한 지역으로서, 광종 2년 (951)에서 현종 9년(1018)까지 전주 대신 안남도호부로서 전라도 지역을 관할하는 역할을 담당하였고, 여전히 보안, 개화, 부령 등의 부안 지역과 정읍, 대산, 인의 등 정읍 지역을 모두 아우르는 지역적 기반을 다시 유지하고 있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