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2. 武王의 출생과 혼인, 그리고 登極
3. 益山 彌勒寺의 창건과 그 배경
4. 맺음말
요약
『삼국유사』무왕조에 실린 서동설화는 무왕의 출생과 성장과정, 혼인 및 등극과정, 미륵사창건 등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설화상에서 무왕은 신성한 용과 연결되었는데 이는 그가 왕의 아들임을 암시한다. 아울러 그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혼자사는 여인 혹은 가난하게 사는 여인 정도로 묘사되었는데 이는 무왕의 모후가 왕족출신이 아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음으로, 무왕은 왕위에 오르기 전 마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래서 그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서동이란 별명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지닌 인물이었다. 따라서 그는 장사꾼으로서 전국곡곡을 돌아다니며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고 백제 뿐만 아니라 신라의 정세를 접하면서 정치적 야심을 키워 나갈 수 있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그는 신라의 선화공주를 꾀로 유인하여 그녀와 결혼하는데 성공하였으며 선화공주의 내조 및 지지세력들의 성원에 힘입어 결국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세 번째로, 미륵사는 용화산 아래 큰 연못 속에서 미륵불이 나타난 인연으로 창건되었다. 이 미륵사창건을 계기로 불교사상과 이에 수반된 신앙행위가 일반 백성들의 생활에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무왕은 자신의 출생 및 성장과정과 관련이 깊은 익산지역에 別都를 경영함으로써 그 지역 토착세력과 왕권과의 밀착을 예상해 볼 수 있으며 그곳에 미륵사를 창검함으로써 익산을 불교적으로 미화하고 신성시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무왕대에는 백제와 신라 두 나라 사이에 혼인관계가 성립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는 백제와 신라 사이에 군사적 충돌이 빈번하였다. 실제로 무왕이 즉위하던 시기는 신라가 한강유역의 점령은 물론 익산과 가까운 지역까지 밀고 올라오는 추세였다. 따라서 무왕은 신라의 예봉을 꺾는 정책을 펼쳐야만 했다. 그래서 익산에 별도를 경영한 이유도 신라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방어함과 동시에 신라를 공격하는 최전방전선지역으로 삼기 위함이었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