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 론
2. 수의 중국통일과 고구려와 왜국의 국교 성립
3. 수와 고구려의 전쟁과 왜국의 견수사 파견
4. 당의 삼국간섭과 왜국의 견당사 파견
5. 고구려·백제 군사동맹의 강화와 당 태종의 고구려 침공
6. 왜국 孝德정권의 친 신라·친 당외교
7. 당·신라 군사 동맹의 강화
8. 고구려·백제·왜국 군사 동맹 체제의 형성
9. 맺음말
요약
본고는 고대 동아시아의 외교 교섭 과정을 수의 등장에서 백제의 멸망까지의 시기에 한정하여 당시의 해상 항로의 문제와 수, 당이 주변에 강요하였던 국제질서를 고려하면서 일본, 중국, 한국의 사료를 검토한 것이다.
그 결과 우선 지금까지 학계에서 널리 알려졌던 것과는 달리 백제와 고구려, 왜국의 비밀 군사 동맹 관계가 595년경에는 이미 성립하여 백제 멸망 이후까지 이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 동맹체제는 고구려가 수, 당을 의식한 군사 협력을 생각했다면 백제와 왜국은 신라를 상대로 하는 군사 협력을 생각하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비밀로 한 이유는 백제를 통해 수, 당의 고구려 침공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고, 또한 한반도에서 왜로 가는 해상 항로를 장악하고 있었던 신라를 의식하였기 때문이었다. 신라는 승려의 통행만을 허락하였으므로 고구려와 백제는 왜국에 승려를 보내든가, 왜국의 견수사와 견당사 파견을 주선한다든가 하면서 동맹 관계를 강화해 나갔던 것이었다.
그러나 고구려를 치려는 당의 방침이 확고하여 침공이 이어지자, 고구려와 백제는 말갈과 함께 655년경부터 신라에 대한 공동 군사행동을 통해 군사동맹체제의 존재를 공개하였고, 그 후 왜국의 군사 훈련과 지도를 통해 군사 동맹 체제의 구성원의 군사력을 강화하는 데 힘썼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