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백제사에서 웅진시대의 시기구분
II. 정통왕조시기 백제와 중국의 외교관계
1. 백제와 중국의 조공 및 책봉관계 형성
2. 웅진시대 백제와 중국의 교류 및 북위와의 대립
III. 부흥운동시기 백제와 중국의 외교관계
1. 백제부흥운동의 전개양상
2. 당의 백제지배정책과 웅진도독부의 성격
요약
백제사에서 웅진시대라고 하면 웅진으로 천도한 문주왕부터 성왕의 사비천도까지 63년의 기간을 가리킨다. 그러나 백제부흥운동시기 웅진도독부의 정치적 중심지로서 웅진이 담당했던 역할도 무시되어서는 안 되기에, 본고에서는 두 시기를 모두 검토 대상으로 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이왕 때인 280년부터 중국과 직접 교류를 시작한 백제는 근초고왕 때인 372년에 오면 책봉까지 받게 된다. 이후 백제와 중국의 조공 및 책봉관계는 지속되어 나갔지만, 웅진시대를 거치며 백제는 주로 남조 왕조들과만 관계를 맺었다. 그 결과 북조의 북위와 백제 사이에 형성된 긴장과 갈등은 두 차례에 걸친 전쟁기사를 나타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 전쟁은 북위와 백제가 직접 충돌한 것이 아니라 북위의 입장을 반영한 고구려와 백제의 싸움으로 파악된다.
한편, 웅진도독부시기 백제와 중국 당나라와의 관계는 부여륭의 철저한 친당정책에 의해 의자왕 때와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즉, 당 고종은 백제에 대한 신라의 영향력을 차단시키면서 백제의 부흥을 도우려 했고, 그 결과 나・당 전쟁까지 발발했던 것이다. 이러한 당의 입장은 끝까지 변하지 않아서 웅진도독부가 한반도에서 쫓겨난 뒤에는 만주의 건안 고성에 재건시켜 주었고, 이를 다시 한반도로 옮겨오기 위해 정치적・군사적으로 계속 노력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물론 당시의 시대적 한계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역사의 주인공들이 사라져감에 따라 원하는 결실을 맺지는 못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웅진도독부시기의 백제와 중국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