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推古朝 대외 노선의 분열
Ⅲ. 舒明-孝德朝 대외관계의 浮沈
1) 舒明朝 對唐 관계의 악화
2) ‘乙巳의 變’과 대외노선의 浮沈
Ⅳ. 齊明․天智朝의 백제 구원의 논리
Ⅴ. 天武朝의 대외관계와 戰後 수습
Ⅵ. 맺음말
요약
7세기 왜국의 대외 긴장감과 위기의 도래 및 그 해소 과정에 대하여 검토하였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7세기 초 推古天皇의 시대에는 중국의 통일왕조의 출현을 계기로 대외적 긴장감이 고조되어 갔으며 마침내 조정 내부에 친백제 노선과 친신라-당 노선의 대립이 나타났다.
둘째, 舒明天皇의 시대는 여전히 외교 노선의 대립이 잠복해 있었다. 친백제 노선을 지지하는 실권자인 소아씨는 친신라-당 노선의 세력을 억누르고 있었다. 당은 高表仁을 왜국에 파견하여 회유하였으나 소아씨는 신라-당과의 연대를 거부하였다.
셋째 645년의 쿠데타를 통해 소아씨를 제거하고 성립한 대화개신 정권은 친신라-당 노선을 추구하였다. 그렇지만 이윽고 中大兄皇子와 정치적 대립이 생겼다. 중대형황자는 孝德天皇을 고립시키고 권력을 장악하는데 성공하였으며 외교정책도 친백제 노선으로 선회하였다.
넷때 660년 신라-당 연합군은 백제를 멸망시켰다. 齊明天皇과 天智天皇은 백제부흥운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군대를 파병하였다. 그렇지만 백촌강의 전투에서 패배하였다. 이후 왜국은 신라-당의 침입을 걱정하며 미중유의 위기감에 사로잡혔다.
다섯째 반란을 통해 집권한 天武天皇은 대외적 위기의 해소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는 친신라 정책을 추구하여 당과의 외교 관계는 단절한 채 오로지 신라와 빈번하게 사신 왕래를 주고받았다. 그렇지만 676년 신라가 당을 격파하자 신라를 경계하기 시작하여 군사적으로 대비하는 조치들을 취하였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