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지역은 선사시대부터 천혜의 지형조건과 교통과 문화의 결절지라는 중요한 지리적 이점을 토대로 일찍이 고대 정치체가 성장해 왔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본고에서는 대전분지 일대의 원삼국~백제시대 유적에서 조사된 물질자료를 토대로 대전지역 고대 정치체의 성립과 변천과정을 규명해보고자 하였다.
대전분지 일대에서 조사된 원삼국~백제시대 생활·분묘유적의 주거지 및 묘제 변화상과 토기류의 교차편년을 중심으로 전반적인 상대연대를 파악한 결과 크게 5기의 분기를 설정할 수 있었다. 1기는 대전지역의 전통적인 주거유형인 타원형계 주거지를 표지로 하며 3세기 중반~말경의 원삼국시대 후기에 해당된다. 1기는 다시 구성동원삼국 1기 및 오정동 취락유적이 공존하는 1-1기와 구성동 원삼국 2·3기 및 신대동 주거지와 분묘 단계의 1-2기로 세분된다. 2기는 마한 재지사회의 내적 변화가 관찰되는 단계로서 종래의 타원형계 주거지와 다른 사주식 방형 주거지가 등장하는 시기이다. 2기는 3세기 말~4세기 중반 사이이며 세부적으로는 3개의 소분기로 구분된다. 장대동 취락유적과 궁동·송촌동 분묘유적, 대정동 취락유적 등이 약간의 시기차를 두고 조성되었는데, 영호남 지역의 지방 세력들과 문화적 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아직 한성백제의 영향은 미미한 단계이다. 3기는 구성동 백제 토광묘를 표지로 하며, 4세기 중~후반대에 해당된다. 구성동 백제토광묘군에서 한성백제토기의 영향이 관찰되면서 한편으로 영남 북부지역 토기양식 등이 공존하는 단계로서 대전지역 고대 정치체의 성장을 엿볼 수 있는 시기이다. 4기는 4세기 후반부터 5세기 후반까지 웅진천도 이전 단계이며, 오정동·추목동·대화동 분묘유적과 용산동·노은동 분묘유적 등이 이 시기의 유적에 해당된다. 4기의 특징이라면 이 시기까지 재래의 주구토광묘 전통이 지속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대전지역 정치체가 한성백제의 직·간접적인 영향 아래에서도 종래의 문화전통을 일정 부분 유지하며 독자적인 정치체를 형성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5기는 궁동유적의 사비기 횡혈식석실분과 월평동유적 일대의 생활유물들을 표지로 하며, 6세기대부터 백제 멸망기까지의 시기에 해당된다. 5기에 접어들면서 대전지역은 백제의 지방세력으로 재편되어 신라의 세력확대를 저지하는 전초기지로서 기능하게 된다.
이상의 원삼국~백제시대의 유적들은 마한 재지사회에서 백제 영역화되는 과정까지의 제 문화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백제의 지방세력으로 재편되는 과정 속에서도 마한 사회 이래의 재지 문화의 특징을 오래도록 유지하면서 한편으로는 주변의 마한 재지세력 및 영남지역과도 교류하면서 유대 관계를 지속하였다. 이러한 특징은 곧 대전지역 고대 정치체의 성격과 特質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