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중국에서 들어온 후 백제에서 성행한 문화
Ⅲ. 중국에서 들어온 후 백제를 거쳐 일본에서 성행한 문화
Ⅳ. 중국에서 들어온 후 百濟化하고 주변으로 확산된 문화
Ⅴ. 중국에서 들어온 후 정착에 실패한 문화
Ⅵ. 왜에서 들어온 후 소멸된 문화
Ⅶ. 맺음말
요약
본고에서는 백제의 대외교섭에 대하여 검토하였다. 중국에서 들어온 후 백제에서 성행한 문화, 중국에서 들어온 후 백제를 거쳐 일본에서 성행한 문화, 중국에서 들어온 후 백제화하고 주변으로 확산된 문화, 중국에서 들어온 후 정착에 실패한 문화, 왜에서 들어온 후 소멸된 문화 등이다.
이를 통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백제는 외래문화의 수용이라는 측면에서 주도적인 자세를 취하여 자신의 필요성에 따라 수용 여부를 결정하였다는 것이다. 한번 수용된 문화라도 자신의 풍토와 문화 환경에 적합하지 않을 경우는 단명하였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백제화과정을 거쳐 외부로 확산되었다. 이런 점에서 백제를 동아시아 문물교류의 중심축으로 설정하는 견해는 타상성을 인정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자세는 개방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동시기에 존재하였던 주변의 어느 나라보다도 백제는 외부문물과 외부세력에 대해 개방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다. 이는 낙랑군과 대방군이 한반도 서북부에 존재하던 시기부터 확인된다. 이군이 축출된 후 발생한 많은 수의 중국계 주민들은 백제에 흡수되어 백제의 대중교섭의 첨병 역할을 맡게 되며 백제의 학문, 기술 발달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가야와 왜를 비롯한 다른 국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백제를 위하여 활동하던 수많은 가야계, 왜계 관료들의 존재는 이런 사정에서 기인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