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당의 백제 침공과 백강 전투
III. 오성산 전설과 오성인
IV. 맺음말
요약
본 고에서는 660년 전개된 당의 백제 침공과 백강 전투, 그리고 이를 둘러싸고 군산 지역에 전해오는 오성산 전설과 천방사 전설의 내용과 그 의미에 대하여 검토하였다. 660년 당의 백제 침공은 신라의 원병 요청에 응한 것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당은 신라를 위하여 신라의 원병 요청에 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백제를 침공하였다. 645년부터 659년까지 15년 동안 6차례에 걸쳐 고구려를 공격하였으나 실패한 당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자하면 우선 백제를 쳐부수어야 한다.’라는 전술 변화에 의거하여 백제를 침공하였던 것이다. 당시 당나라는 신라의 원병 요청이 없더라도 고구려 공격을 위해서 백제를 침공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한편 『삼국사기』에는 백제의 패망 원인으로 의자왕과 대신들이 성충과 흥수가 외적이 쳐들어올 때 백강을 지키라고 한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실제 백제의 군민은 당나라 침략군을 백강에서 사수하였다. 이 전투에서 수천여 명의 백제군이 전사하였고, 당군이 입은 피해도 상당수로 짐작된다. 당군이 입은 피해는 정사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삼국유사』나 오성산 전설, 천방사 전설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김부식은 백제의 패망을 나당연합군의 기습적인 침략이 아니라 백제의 어리석고 무능한 탓으로 돌리기 위해 이와 같이 사실을 왜곡한 것으로 보인다.
군산 지역에는 660년 백강 전투와 관련하여 두 가지 다른 유형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오성산 전설과 천방사 전설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두 전설은 침략군에 대해 전혀 다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오성산 전설에서 군산 주민인 다섯 명의 노인은 길을 묻는 소정방에 대해 침략자들에게 어찌 길을 가르쳐주겠냐고 저항하였지만, 천방사 전설에서 이 지역 불교계는 절 천 채만 지어주면 침략자에게도 협력할 수 있었음을 전하고 있다. 이후 군산 주민들에게 다섯 노인은 성인으로 추앙되어 외적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추모되는 반면, 천방사는 민중들이 빈대만 보면 이들을 생각할 만큼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이후 오성인의 외적에 저항 정신은 부여 지역까지 전파되어 문동교 전설에서도 오성인이 등장하고 있다.
백강 전투와 오성산 전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적지 않다. 우선 강대국의 군사적 행동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일 뿐이라는 점이다. 둘째는 반민족적인 세계주의․사대주의는 대다수 민중들의 비판과 비난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