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 언
2. 5세기 초반 신라와 백제의 우호 모색
3. 5세기 중·종반 신라와 백제의 군사동맹
4. 5세기 신라와 백제의 상호 인식
5. 결 어
요약
이 글은 5세기 신라와 백제 관계를 살펴보기 위하여 5세기 전체를 3시기로 구분하였다. 즉 신라와 백제의 우호가 맺어지는 433·434년까지를 초반, 고구려에 의해 백제의 한성이 공략당하는 475년까지를 중반, 그 이후를 종반으로 구분하였다. 이는 고구려라는 매개 변수를 고려하여 5세기 양국 관계의 전개 과정을 살펴볼 때, 유효한 구분이라 판단된다. 이때 나제동맹의 성립은 455년을 주목하고자 한다.
5세기 초반 신라․백제는 고구려의 압력에 대처하기 위하여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었다. 그 결과가 433·434년 양국의 우호 관계 성립으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당시 신라는 고구려에 예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반 고구려적인 행위에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이와 같은 신라와 백제의 움직임이 결국 5세기 중반인 455년에 와서 나제동맹의 존재로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5세기 중반은 양국이 서로를 가장 필요로 하였던 시기라 판단된다. 이때 양국은 고구려의 군사적 공격을 공동 방어로 대응할 수 있었다. 이러한 양국의 상호 인식은 475년 백제의 한성이 고구려에게 일시적으로 공략당한 이후, 5세기 종반에 나제동맹에 임하는 신라의 입장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고 보인다.
5세기 종반은 나제동맹군이 고구려에 대항하여 최대의 성과를 올린 시기이다. 신라의 경우 481년 고구려의 대규모 침공을 동맹군의 협조를 받아 물리칠 수 있었다. 이때 신라 영토 내에 존재하던 고구려 당주의 세력도 위축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고구려 당주 세력은 500년 즈음에 소백산맥 이북으로 물러났으리라 보인다. 이즈음 신라는 나제동맹의 유효성을 인정하면서도 동맹에 점차 소극적 움직임을 보인 듯하다. 즉 기본적으로는 백제와의 우호 관계 아래에서 서서히 동맹군의 입장을 저버리고 독자 노선을 택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기 때문에 백제 동성왕이 501년에 탄현에 책을 쌓아 신라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라 생각된다.
이처럼 신라와 백제의 상대국에 대한 인식은 자신의 생존을 위한 국가적 필요성이 기준이 되어 작용했다. 특히 5세기 초반의 신라는 자신의 성장과 발전에 제약 요소로 작용하던 고구려의 과도한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백제를 필요로 하였다. 아울러 백제는 고구려에 대한 외교적 봉쇄 전략과 군사적 도움을 위해 신라를 필요로 하였다.
그러나 5세기 중·종반에 병역이나 자연재해 등으로 인하여 백제 백성이 신라로 집단 이주하는 사례로 보아, 국경 지역 백제 백성들의 국가 귀속 의식은 신라보다 낮았다고 여겨진다. 아울러 백제 백성들은 상대적으로 신라에 우호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고 보인다. 그리고 백제 지역에서 출토되는 5세기 종반․6세기 초반의 장신구나 금동신발 등의 사례로 보아, 백제 지배층 내에서는 신라 문물에 대한 우호적 입장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