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일본'과 가림성
III. 가림성과 가림현
IV. 국가제사에 편제된 이유와 이후의 가림성
V. 맺음말
요약
제사지 신라조에 따르면 가림성은 小祀의 하나로 편제되어 있으나, 註記되어 있는 '一本'에는 가림성은 없다고 하였다. '一本'은 경덕왕 16년 이후의 기록이다. 그리고 가림성의 소재지명인 가림현은 소부리주의 領縣 중 하나였고 소부리주가 소부리군으로 격하되면서 이것은 웅주 소속의 가림군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로 볼 때 가림성의 소재지명인 가림현이 있었던 시기는 문무왕 11년부터 신문왕 6년 이전까지라고 하였다.
신라 국가제사에 편제된 구백제지역의 산천제사는 웅주지역에 편중되어 있고 사비지역은 배제되었다. 그런데 사비지역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가림성이 신라 국가제사에 편제된 것은 이곳이 군사적 요충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가림성은 '一本'의 기록을 볼 때 경덕왕 16년 이후에는 국가제사의 대상이 아니었다. 아마도 소부리주가 소부리군으로 격하된 신문왕 6년 이후부터 경덕왕 16년 이전에 가림성은 신라 국가제사에서 혁파되지 않았을까 하였다. 이것은 사비지역의 三山이 신라 국가제사에 편제되지 않은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가림성이 혁파된 후 신라 중대왕실은 웅주의 상조음거서와 전주의 동로악을 중사와 소사에 편제함으로써 그것을 대신하게 하였다.
이상에서 본 논문에서는 백제의 가림성이 신라 국가제사에 편제되고 그것이 혁파되는 과정을 통해 신라 국가제사에서 백제의 가림성이 차지하고 있는 의미를 살펴보았다. (필자 요약)